(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증권사 채권형 랩·신탁 사태를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의 1심 판결이 속속 나오면서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당국의 중징계에도 불구하고 실제 민사 법정에서는 '어디까지를 손해로 볼 것인가'를 두고 고객과 증권사 간 희비가 엇갈리는 양상이다.
특히 법원이 고객들이 주장한 기회비용이나 기대 수익을 손해액 산정에서 배척하면서, 289억 원 규모의 징계 철퇴가 내려졌던 중대 사안임에도 민사 배상 결과는 증권사 측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최근 신도리코가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인용해 약 40억4천만 원의 배상을 명했다.
앞서 신도리코는 2022년 10월 한국투자증권에 미화 4천400만 달러를 투자 원금으로 납입하고 1년 만기 특정금전신탁에 가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수익률 7.75%를 제시하며 A1등급 CP, AA-등급 채권을 주요 운용 대상으로 제안했으나, 이듬해 만기 시 반환된 금액은 원금에 못 미치는 4천325만여 달러에 그쳤다.
법원이 증권사의 의무 위반을 인정한 결정적 논거는 만기 미스매칭 미고지와 부적절한 고가 매입이었다. 법원은 한국투자증권이 장부가로 CP를 고가 매입한 것을 두고 수익자의 최상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사 연계·교체 거래를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했으며 금융상품제안서에 만기 불일치 사실을 기재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특히 해당 사건이 투자일임이 아닌 특정금전신탁이었다는 점이 주효했다.
법원은 자본시장법 제102조를 근거로 "신탁업자가 부담하는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에 관하여 수익자가 전문투자자인지 일반투자자인지 구별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전문투자자라 할지라도 법적 보호 수준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만 법원은 업계 관행과 레고랜드 사태 등 시장 상황을 참작해 증권사 배상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반면 원금 자체는 보전했거나 기수익금이 컸던 MG손해보험의 사례는 달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0민사부는 지난해 9월 11일 MG손해보험이 한국투자증권과 교보증권을 상대로 낸 소송을 전부 기각했다.
MG손해보험은 두 증권사 랩 상품에 수백억 원을 운용하며 한국투자증권에 약 33억 원, 교보증권에 약 34억 원의 미회수 원금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MG손해보험이 상품 가입 전 수익률 요약서를 통해 이미 손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손실 발생 이후 증권사로부터 지급받은 누적 수익금이 미회수 원금을 초과한 점이 주된 요인이 됐다. 법원은 누적된 기수익금이 미회수 원금보다 많은 이상, 증권사가 애초 제시했던 예상 수익률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손해가 입증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법원은 "제시수익률은 확정금리가 아니라 예상수익률일 뿐"이라며 중견 보험회사이자 전문투자자인 원고의 지위와 조화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원금 전액과 수익금 일부를 돌려받고도 이자 차액 형태의 기회비용을 청구했던 바로저축은행 등 3개사의 소송 역시 기각됐다.
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증권사의 선관주의의무 위반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을 뿐만 아니라, 설사 위반이 인정된다하더라도 손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원고 중 바로저축은행이 상호저축은행중앙회 수입예탁금 예치 시 얻을 수 있었을 이익을, 나머지 2개사(신안캐피탈·바로자산운용) 역시 이와 유사한 기회비용을 각각 손해액으로 산정해 청구한 것에 대해 배척 결정을 내렸다.
업계 일각에서는 법원의 이 같은 엄격한 잣대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시는 단기 자금시장이 매우 경색된 상황이었고 증권사가 제때 돈을 돌려주지 못한 사이 고객이 실질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자금 부담이 상당했을 텐데, 판결에서는 원금을 돌려받았느냐 아니냐의 산술적 기준만 적용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현재 이 세 사건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으로 무대를 옮긴 상태다. 증권사 측 방어는 세 사건 모두 법무법인 율촌이 맡았다.
가장 먼저 항소심 재판이 열리는 곳은 기수익금의 성격을 다투는 MG손해보험 사건이다. MG손해보험은 1심 패소 이후 청구액을 기존 5억 원에서 33억5천만 원으로 대폭 늘렸으며, 소송대리인도 법무법인 세양으로 교체했다. 오는 3월 13일 항소심 첫 변론기일이 열리며, 바로저축은행 사건과 신도리코 쌍방 항소 건 역시 치열한 2라운드 법리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촬영]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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