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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세연의 프리즘] 지능순

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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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국장 탈출은 지능순"

한국판 '월스트리트베츠'로 불리는 주식 갤러리가 만들어낸 최대 유행어다. 똑똑한 투자자는 미국 증시로 투자 이민을 떠나고, 국장에 남는 건 멍청한 투자자뿐이라는 냉소가 담겼다.

2020년 서학개미 열풍과 함께 등장한 이 표현은 2025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일종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찔끔 오르고 폭삭 주저앉기'를 반복하던 코스피와 달리 S&P500과 나스닥은 '돈 복사기', '무적'으로 불렸다. 굳이 국장에 남을 이유가 없다는 자조와 함께 'IQ 테스트장=국장'이란 냉혹한 인식이 투자자 사이에 공유됐다.

이 자극적인 밈은 어느 순간 공식 언어로 흡수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국내 증시에 불만을 가진 투자자들의 정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코스피200 ETF에 투자하며 "같은 배를 탔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 취임 후에는 국내 증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압축한 메시지가 됐다. 지난해 9월 리서치센터장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누군가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하지 않았나. 빨리 '국장 복귀는 지능순'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불공정과 불투명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정부가 목표로 했던 코스피 5,000을 넘어 6,000마저 넘어선 지금, 이 밈은 단순한 부양을 넘어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선언으로 진화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장 탈출은 지능순', 이 표현은 단순한 유행어나 과장된 자조로 치부하기 어려웠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누적된 실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가 응축돼 있었다. 상당수 청년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은 이미 '공정하지 않은 운동장',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로 인식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이들이 미국 시장으로 이동하는 이유도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서가 아니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적어도 룰이 공정하게 작동하는 시장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인식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최근 우리 시장의 지수가 반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학개미'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배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숫자가 일부 개선됐다고 해서 한 번 훼손된 신뢰가 단기간 회복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고 썼다.

국장 탈출이 답이라는 청년들의 분노를 헤아리고, 이런 분노를 일게 한 우리 시장의 불공정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불공정을 인정했으니 해결하겠다는 당국자의 의지다.

해법은 제도와 정책의 변화다. 국내 증시 프레임을 바꾼다면 지금까지의 지능순을 역이용하는 게 맞다. 그러나 지수가 오르고 정책 의지가 강해도 서학개미가 국내로 돌아오는 흐름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지난해 4월 9일 2,284.72에 머물렀던 코스피는 불과 10개월 만에 3,000, 4,000, 5,000을 차례로 격파했다. 꿈의 5천피를 돌파한 지 한 달 만에 6천피라는 새 역사도 또 썼다. 지수 상승의 핵심 동력은 그동안 주식을 하지 않거나 소극적이던 개인투자자 자금, 퇴직연금이 유입된 ETF였다. 시가총액 비중대로 기계적으로 매수하는 자금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쏠리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미국 시장이 흔들린 점도 영향을 줬다. AI 붐에 따른 과잉 투자 우려와 칩플레이션 부담이 커지던 가운데, 시트리니 리서치의 '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보고서가 2028년 AI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AI 파괴론은 미국 시장에서는 공포 매도를 촉발했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하드웨어 반도체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서학개미와 달리 글로벌 자금은 미국을 떠나 반도체 호재가 있는 한국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해외 주식펀드에서 한국 증시로 들어온 자금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문제는 '6천피'라는 결과가 시장에 대한 신뢰 회복의 결과라기보다 특정 조건이 만들어낸 자금 이동의 산물에 가깝다는 점이다. ETF라는 구조적인 수급, 반도체라는 제한된 업종, 미국 시장의 불안이라는 외생 변수가 맞물린 결과일 뿐이다. '백만닉스' '20만전자'만으로 시장 전반의 공정성이나 예측 가능성이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

지능순이라는 말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다. 시장이 공정하지 않을 때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전략에 가깝다. 떠나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 그리고 끝까지 '이번엔 다를 것'이라 믿는 사람이 갈린다. 최근 전개되는 코스피 상승만으로 이 서열을 뒤집을 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냉소만 있던 마음 한쪽에 기대가 자라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국내 증시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정치적 관심이 사그라드는 순간 개혁 기대가 소멸하는 게 아니라 정책 안정성과 지속성이 유지되고, 기업들도 따르면 강요하지 않아도 신뢰는 생긴다. 시장이 스스로 증명하면 떠난 이들은 돌아오고, 남아 있는 이들도 의심하지 않는다. 요행보다 성실한 투자, 정보보다 펀더멘털이 존중되는 시장이 자리 잡는 순간 지능순은 떠나는 이유가 아니라 돌아오는 근거가 된다. (증권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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