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인다면, 그것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위기 때마다 던지는 서늘한 경고가 현재 월가의 사모자본시장을 관통하고 있다.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의 틈새에서 부실이라는 '바퀴벌레'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모시장의 위기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구조적 징후로 번지고 있다. 블루 아울의 리테일 펀드 'OBDC II'가 환매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글로벌 사모펀드 거물 KKR이 관리하는 FS KKR 캐피털(FSK)도 직격탄을 맞았다. FSK는 부실 대출 급증으로 인해 4분기 순투자이익(NII)이 전 분기 대비 약 16% 급감했고, 주가는 하루 만에 15% 폭락했다. 대서양 건너 영국의 모기지 업체 마켓파이낸셜솔루션(MFS)이 파산하면서 주요 미국 투자은행과 사모펀드들이 부실에 엮인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의 공룡 블랙스톤도 820억달러 규모의 사모대출 펀드(BCRED)에 쏟아진 환매 요구를 감당하기 위해 4억달러(약 5천870억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수혈하는 등 사모대출 회사에서 연달아 배드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세상을 바꿀 거라던 'AI 혁명'이 사모대출 시장의 부실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FSK의 포트폴리오 중 부실화된 기업의 상당수는 새로운 AI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다. 이들의 가치가 급락하며 대출 채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고객 서비스 소프트웨어인 메달리아(Medallia)의 대출 가치가 액면가 대비 80% 미만으로 상각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동안 AI 산업에 대규모로 베팅했던 블루아울이 환매 중단을 선언한 것도 AI 산업과 사모대출 시장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모시장의 부실이 경종을 울리는 가운데 AI 기업들의 자금 조달방식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이제 AI 반도체(GPU)를 담보로 수조원을 빌리는 'GPU 담보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특수목적법인(SPV)을 세워 대출을 실행함으로써 거액의 부채를 본체 재무제표에 기록하지 않는 '재무적 기교'를 부린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부채를 장부 밖으로 덜어내고,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률에 매료되는 윈윈 게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화려한 투자 같아도 기술 도태 속도가 빨라져 담보물인 GPU 가치가 폭락할 경우 금융 시스템엔 또 다른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월가는 AI를 단순한 기술을 넘어 석유나 농산물 같은 '금융 상품'으로 구조화하는 'AI의 금융화'를 추진하고 있다. 컴퓨팅 파워 경매시장이 열리고 GPU 가격을 추종하는 지수와 파생상품이 개발되는 등 금융공학의 정수가 AI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다. 사모시장 하단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한 '부실'이라는 바퀴벌레들과 수면 위에서 부채를 숨기며 팽창하는 AI의 금융화 결합은 월스트리트에 또 다른 재앙을 예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투명성 이슈는 또 다른 거대한 거품의 서막이 될 수 있다. (국제경제부 선임기자)
jang73@yna.co.kr
이장원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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