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싱가포르·필리핀 순방은 단순한 양자 외교 일정을 넘어 정부의 대아세안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투자의 허브인 싱가포르와 전통적 우방이자 성장 시장인 필리핀을 연이어 방문한 이번 일정은 '투자형 외교'와 '수출형 외교'를 양축으로 실용외교를 앞세운 이재명 정부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사용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마닐라에서 열린 비즈니스 포럼을 끝으로 싱가포르와 필리핀에서의 경제 외교 행보를 마무리했다.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아세안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린 비즈니스 포럼답게 롯데·현대·SK·LG 등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필리핀 방문은 실물 경제 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함께한 경제사절단 역시 방산, 원전, 인프라, K-푸드, 헬스 분야에서 필리핀과의 실질 협력을 강조하며 신 시장을 개척하는데 주력했다.
이미 필리핀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동맹이라는 역사적 관계를 바탕으로 방산과 인프라 협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국가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양국 정상은 필리핀의 군사 현대화, 해경 역량 강화, 조선업 재건을 위한 투자와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위치를 강화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민다나오 지역의 판길만 교량 산업을 비롯해 1976년 착공 이래 중단됐던 바탄 원전 재개 등은 우리 기업의 손길이 필요한 사례로 언급됐다.
또한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임차 운영하고 있는 HD현대중공업이 적극적으로 나서 필리핀의 조선업 재건을 지원하며 새로운 수주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다.
필리핀은 선박 건조량 기준 세계 4위로 우리나라(2위)에게는 큰 시장이다.
(마닐라=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4일 필리핀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3.4 xyz@yna.co.kr
반면 싱가포르 방문의 핵심은 글로벌 자본과 인공지능(AI)을 앞세운 기술 협력이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금융 허브이자 글로벌 투자 거점인 싱가포르에서 이 대통령은 국내 기업이 더 쉬운 자본 조달과 동남아 시장 진출의 거점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했다.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업그레이드하며 디지털과 공급망 등 새로운 통상 환경을 반영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은행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자산운용 그룹인 '세비오라'가 투자 파트너십 MOU를 체결한 것도 해외자본이 국내 기업과 시장에 유입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또한 '한-싱가포르 AI 커넥트 서밋'에서는 우리나라 주도로 오는 2030년까지 3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모펀드를 조성해 벤처와 스타트업을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이미 싱가포르와 아세안 지역에서 18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펀드를 운영 중인 정부는 글로벌 AI 강국인 싱가포르와의 협력을 통해 벤처 육성을 비롯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시너지를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처럼 공급망을 비롯해 그린경제, 첨단 기술 협력 등 새로운 분야를 중심으로 싱가포르와의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단순한 교역 확대를 넘어 투자와 미래형 산업 협력을 제도적으로 고도화하겠다는 정부의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이번 순방은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는 투자형 외교와 산업·인프라 수출을 확대하는 수출형 외교를 동시에 추진한 '투트랙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는 최근의 국제 정세와도 맞닿아 있다.
극심한 미중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과 경제 질서가 재편된 가운데 한국은 외교·경제 파트너를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싱가포르·필리핀 국빈방문과 맞물려 발생한 중동사태로 국제 정세의 갈등 구조가 더욱 복잡, 심화하면서 더욱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아세안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가운데 하나로 국내 기업의 생산 거점이자 주요 교역 대상이다.
무엇보다 아세안 국가들은 미중 경쟁 속에서도 양측과 협력을 유지하는 '전략적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어, 한국 입장에서도 경제 협력을 확대할 여지가 큰 지역으로 평가된다.
관계 부처에서도 아세안을 경제 외교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이번 순방 역시 싱가포르와 필리핀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경제 영토를 다변화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실용외교를 앞세운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아세안과 중동, 유럽 등으로 외연을 더욱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과 중국, 일본을 이어 아세안을 향한 양자 외교의 흐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대외정세 변화가 반영된 선택이지만 정부의 실용외교, 경제외교 구호를 고려하면 동남아는 갈수록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jsjeong@yna.co.kr
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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