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한창헌의 단상] 유가 급등기 금융의 역할

26.03.10.
읽는시간 0

(서울=연합인포맥스) 오일 쇼크나 다름없다. 국제유가(서부 텍사스산 원유, WTI) 4월물은 지난 9일 하루 새 30% 넘게 폭등했다.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장중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로 보면 유가는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기존의 상승 폭 기록이 무색할 정도다. 세계 원유 공급량의 20% 이상을 담당해 온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수송 길이 막힌 탓이다. 여기에 중동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줄이는 강제 조치에 들어가면서 이른바 '패닉장'이 연출됐다. 간밤에 다소 안정세를 보였지만, 글로벌 경제가 오일 쇼크를 넘어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다가서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국제유가 추이

출처:연합뉴스 그래픽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시기는 에너지 가격의 문제를 넘어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원자재가격 상승은 기업의 생산비용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는 곧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가계는 생활비 부담을 느끼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며, 국가 경제는 성장 둔화의 위험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은 자금 중개의 역할을 넘어 위기 완화와 안정적 성장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유가 급등은 특히 제조업과 운송업,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석유화학업계, 항공사, 해운사, 그리고 일부 제조업 등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은행은 이들 기업이 단기 유동성 위기를 겪지 않도록 적극적인 금융 지원에 나서야 한다. 원자재 수입대금 결제와 운영자금 확보 등 단기자금 수요가 급증할 때 신속한 대출과 보증을 통해 기업의 숨통을 틔워야 한다. 유가 급등이 지속되면 이들 기업의 현금흐름까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에 대출 상환 유예나 금리 조정 같은 유연한 금융 조건을 제공하는 방안도 살펴봐야 한다. 대기업은 자체적인 자금조달 능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은행은 중소기업 전용 긴급 자금 라인을 마련해 경제의 기반을 지켜야 한다. 동시에 가계 금융안정도 중요하다. 유가 상승은 생활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므로 은행은 서민층의 신용대출,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는 금융상품을 제공해 사회적 불안을 줄여야 한다.

금융사의 역할이 현장에서의 대응이라면, 금융당국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유가 급등은 환율과 물가에 직결된다. 통화당국의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와 금리 조정 등의 매크로 정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에너지 다소비 업종과 수출기업에 긴급 자금을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은 시장과 국민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 불안 심리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투기적 움직임이 강화되므로 신뢰 있는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

김용범 정책실장, 비상경제점검회의 관련 브리핑

연합뉴스 자료사진

실제로 금융당국은 100조원 규모의 시장안정 프로그램 가동 카드를 꺼내든 상태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자본시장과 외환시장, 채권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매입을 통해 기업 자금조달을 지원하며, 증시 안정펀드를 통해 주가 급락을 방어하는 종합적 패키지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기적으로 시장의 패닉을 진정시키고, 중장기적으로 기업과 가계가 위기 국면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무엇보다도 "국가가 금융시장을 지켜보고 있으며 필요시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만으로도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고 시장의 불안을 완화하는 효과가 크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9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점검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중동 상황의 장기화 우려로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비해 과도하게 지표가 괴리된 측면이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100조원 플러스 알파 등 시장안정 조치를 적기에 시행하고, 필요시 추가 조치방안도 선제적으로 마련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가 급등은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충격이다. 기업이나 가계가 잘못해 생긴 위기가 아니란 얘기다. 그렇기에 금융은 기업과 가계에 대해 채권자의 입장에서만 접근해선 안 된다.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지속성을 위한 공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은행은 단기적 수익보다 장기 신뢰를 선택해야 하며, 금융당국은 규제와 지원을 적절히 조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 특히 대규모 안정 프로그램을 통해 시장을 지탱하는 것은 '돈 풀기'가 아니라 경제주체들에 신뢰를 제공하는 행위다. 유가 급등은 피할 수 없는 외부 충격이지만, 그 충격을 어떻게 흡수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회복력은 달라진다. 금융회사는 기업과 가계의 든든한 동반자가 돼야 하고, 금융당국은 매크로 지원과 금융안정 설계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한창헌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