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요즘 청년들의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은 "일자리가 없다"이다. 공채는 줄고 인턴 자리도 하늘의 별 따기다. 사실 우리 때도 있었던 '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이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취업시장의 체감온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여의도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들린다. "뽑을 사람이 없다"
'6천피', 개인투자자 1천500만명 시대. 이란사태로 인한 증시 급락 전 독일에 이어 대만까지 제치며 전세계 8위 규모의 시장으로 우뚝 선 K-증시에서 일하고 싶은 청년은 늘었지만,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인재가 없다고 한다. 자본시장의 역설적인 풍경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금융권 취업의 꽃은 금융공기업이었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국거래소, 예금보험공사 등등. 이른바 '금융공기업 A매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금융권 취업 준비생들의 시계는 그 시험 일정에 맞춰 돌아갔다. 그게 아니라면 시중은행을 택했다. 안정성과 공공성을 갖춘 자리를 찾았다.
최근 취업 시장에서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금융권 인재들의 시선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업계 내부에서도 느껴진다. 한 증권사 CEO의 두 아들은 모두 여의도에서 증권맨으로 일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 딸도 아버지의 길을 따라 펀드매니저로 활약한다.
예전 같으면 쉽게 보기 어려웠을 장면이다. 한때 증권업은 시장 상황에 따라 부침이 큰 직업으로 여겨졌다. 이제는 대를 이어도 괜찮은 직업이 됐다.
금융투자업계는 기회의 땅이다. 성과에 따른 보상 문화가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곳이다. CEO보다 많이 받는 연봉킹이 가장 많은 곳이 동여의도다. 파생상품과 금융공학, 트레이딩 분야에서는 이공계 인재들이 연봉 상위권, 초고속 승진 주인공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버는 미래에셋, 글로벌로 뻗어나가는 한국투자증권을 통하면 월가에서 한판 붙어볼 수도 있다. 올해 초 국부펀드 KIC에서 PE 투자를 담당한 운용역은 뉴욕 현지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로 이적했다. 앞서 글로벌 '큰손'으로 꼽히는 중동 국부펀드로 운용역이 자리를 옮긴 데 이은 행보다. 국내 금융투자인력을 보는 전 세계의 눈이 달라졌다.
여의도의 인력 구조는 특이하다. 이른바 '문과톱과 이과톱의 결합'. CEO와 주요 경영진은 경영대 출신의 문과 엘리트가 주류를 이루고, 파생상품과 퀀트, 트레이딩 시스템 등 시장 영역에서는 수학과 컴퓨터공학 등 이공계 인재들이 활약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일하자'는 분위기가 강하고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이 조합이 아직 완전히 맞물려 돌아가지는 않지만, 핀테크와 금융의 경계가 흐려진 지금 이과생들에게도 판교가 아닌 여의도는 꽤 괜찮은 선택지가 됐다.
다만 아직 여의도 C레벨에서 CTO 출신을 찾기는 쉽지 않고, IT 조직은 여전히 지원 부서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고액 연봉으로 영입된 이공계 인재들이 일정 시점 이후 업계를 떠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인력이 올라갈 수 있는 커리어 경로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빈틈도 있다. 금융투자업은 전형적인 '사람 산업'이다. 공장 설비도, 재고도 없다. 수조 원의 자금을 움직이고 거대한 딜을 성사시키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인적 자본이 곧 경쟁력의 원천이다.
정작 이 핵심 자산을 관리하고 키워내야 할 인사(HR) 시스템은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 인사 조직은 여전히 '백오피스'로 취급받는다. 대부분 영업이나 기획 부서에서 성과를 인정받은 뒤 인사 부서로 이동하는 순환보직 형태가 일반적이다.
월가의 풍경은 다르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같은 글로벌 IB에서는 인사 총괄이 CEO의 핵심 파트너로서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C레벨 경영진이다. 수십 년 동안 인사 업무만 연구해온 전문가들이 전 세계 인력의 성과 데이터를 분석하고 보상 체계를 설계한다.
또, 글로벌 IB는 데이터 분석과 체계적인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를 키우지만, 국내는 채용전형으로 선발한다. 특히 경력직 중심이다. 일부 대형 증권사를 제외하면 정기 공채보다 필요할 때마다 경력직을 영입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미 경험을 갖춘 인력을 데려오는 것이 당장의 성과를 내기에는 효율적인 것도 사실이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산업 전체의 인재풀은 점점 얇아질 수밖에 없다. 신입을 뽑아 키우기보다는 이미 다른 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인력을 데려오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결국 인재는 돌고 돌게 된다.
이제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키우는 구조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런 생각에서 연합인포맥스는 1월부터 [금융, 사람이 미래다]는 기획을 이어왔다.
금융투자업은 다른 산업 못지않게 돈을 벌고, 경제 영향을 키웠다. 달러 역군 '금융의 삼성전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제는 그만큼 인재 육성에서도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자본시장을 책임질 미래세대에 투자하고 일할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
한국 자본시장이 어디까지 커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자본시장의 미래는 결국 어떤 인재들이 여의도로 들어오느냐에 달려 있다. (증권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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