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례 봐야…22개 상장 자회사 거느렸던 히타치, 완전 편입·매각해 0개로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쪼개기 상장부터 지배주주 중심의 모·자회사 주식교환까지 잇단 중복상장 논란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한국거래소가 문제 해결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제51차 세미나에서는 입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관행을 바꾸는 선제적 역할을 거래소가 맡아야 한다는 진단이 잇따랐다.
◇"사실상 차등의결권"…거버넌스 악화·코리아 디스카운트 주범
패널 토론에서는 자본시장법상 시가 산식의 맹점과 더불어 중복상장 구조 자체가 낳는 필연적인 이해상충 문제가 집중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중복상장을 가리켜 "사실상의 차등의결권 제도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주범"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단계 출자 구조를 통해 3% 남짓한 실질 지분만으로도 사업회사 이사회를 100% 통제할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지분 30%만 소유하고 있고 자회사가 손자회사의 지분 30%를 소유하고 있다면, 지주회사는 손자회사의 지분 3%만 소유한 셈이지만, 의결권은 30% 행사 가능하다.
이 대표는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사업회사가 벌어들인 현금이 일반 주주를 위한 배당 대신 지배주주의 입맛에 맞는 비핵심 사업 투자에 쓰이기 십상"이라며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의 이해관계 상충을 우려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 본부장 역시 "모회사(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동시 상장되면 투자자들은 당연히 사업회사로 몰릴 수밖에 없어 모회사의 디스카운트가 구조적으로 발생한다"고 거들었다.
김 본부장은 이어 "일본 상장사를 모회사로 두면서 한국에만 상장된 자회사들이 양국의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국경을 넘는 중복상장' 사례들도 꽤 많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짚었다.
이창환 대표는 합병이나 주식 교환 등 지배력의 레버리지가 활용되는 과정에서 절차적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해관계가 없는 소수주주 다수결(MOM) 제도의 도입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80도 바뀐 日 거래소…"벌금 아닌 인식 개선 주도해야"
입법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으로는 거래소 주도의 문화 개선이 꼽혔다.
발제를 맡은 김정남 전 APG 선진시장 헤드는 "입법은 시간이 걸리고 정치적 저항이 크며, 최소한의 규범이기에 실질적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며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의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TSE는 상장사들에게 중복상장을 유지해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명확히 밝히라고 강도 높게 요구했다. "자회사 핵심 사업의 시너지가 높다면 100%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고 시너지가 없다면 지분을 전량 매각하라"는 이른바 '최적의 소유자(Best Owner)' 원칙을 기업들에 제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TSE는 PBR 1배 미만 기업에 개선안 공시를 의무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 명단을 매달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강력한 압박 정책을 폈다. 나아가 모회사 지분을 제외한 소수주주들만의 별도 의결 결과를 의무적으로 공시하게 하고 자회사 이사회의 독립성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상장 규칙 개정안도 내놨다.
그 결과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일례로 과거 22개의 상장 자회사를 거느렸던 히타치는 이를 사실상 모두 완전 편입하거나 매각해 상장 자회사를 '0개' 수준으로 줄였다. 2007년 467개에 달하던 일본 전체의 중복상장 자회사 역시 지난해 7월 기준 215개로 반토막 났다.
거래소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 차이도 화두에 올랐다. 김 전 헤드는 "과거 일본 거래소나 현재의 한국거래소 모두 관료 출신이나 내부 승진 위주로 수장이 정해져 인프라의 안정적 운영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지적했다.
반면 2023년 취임 후 JPX를 180도 바꾼 야마지 히로미 대표에 대해서는 "노무라증권에서 30년간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은 철저한 시장 출신"이라고 대비했다.
그는 "시장 전문가인 야마지 대표를 2023년 이후 세 차례나 직접 면담했다"고 밝히며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이 한국거래소 이사장과 면담할 기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어 장내 씁쓸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중복상장 비율 매년 공개해야…제도 정비 필요"
지주회사 체제가 공고하고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한국 시장에도 일본의 사례를 적용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의문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 전 헤드는 시장 관행 개선을 위한 거래소의 역할을 '신호등'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 이유는 법적 페널티 때문만이 아니라 하면 안 된다는 양심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공통된 문화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거래소가 인식 고양과 문화 형성 측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공통된 인식을 시장에 심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거래소 역시 코리아 디스카운트 개선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회 중심의 입법이 거래소보다 앞서가는 양상이다.
이창환 대표는 "중복상장 비율을 어느 누구도 트래킹하지 않는 것 같다"며 거래소가 매년 중복상장 비율을 공개하고 감축 목표를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아울러 "거래소의 역할 확대와 함께 자본시장법 개정 등 제도 정비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일본은 거래소가 중추적 역할을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늘 논의가 의미 있다"고 세미나를 갈무리했다.
[연합인포맥스 촬영]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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