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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의 글로브] 여전히 안갯속

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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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숨 가쁘게 쏟아지는 이란 뉴스에 국제유가가 일희일비하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이 이란의 석유 수출 중심지인 하르그섬(Kharg Island)을 폭격했다는 소식에 100달러를 재돌파했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기대감에 16일(미국시간) 5% 이상 급락했다.

하르그섬은 하루 700만 배럴의 원유가 수출되는 이란 석유 수출의 핵심 허브로, 이란의 원유 수출량 중 약 90%(연간 평균 9억5천만 배럴)가 이 섬을 통과한다.

이번 미국의 공격은 하르그섬 군사시설에 국한된 것으로 석유 시설까지 때리겠냐는 의구심이 나왔지만, 현실화할 경우 유가가 150~160달러로 직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이에 불안한 상승 흐름을 타던 유가는 이란 측이 호르무즈 해협을 두고 '적들과 그들의 공격을 지원하는 자들에게만' 닫혀 있다는 미묘한 발언을 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가 한국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을 상대로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해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전략 비축유를 4억 배럴 방출한 데 이어 '필요시 추가 방출도 가능하다'고 밝힌 점도 유가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이대로 유가가 계속 우하향 곡선을 그릴지는 미지수다. 이란 전쟁이 3주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언제 종결될지는 여전히 시계 '제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4~5주 정도를 예상한다고 말했지만, 전쟁이 중장기전으로 흐를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란 사태의 전개에 따라 유가 급등락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대화 중이지만 이란이 협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고, 이란은 미국과 협상할 이유가 없다며 장기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전쟁 비용과 미국 내 고조되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트럼프 대통령이 셀프 종전을 선언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종전 선언=유가 안정' 공식이 성립할지는 알 수 없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란의 보복 강도에 따라 걸프 지역에서 에너지 생산이 영구적으로 감소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희토류라는 미국의 약점을 쥐고 실질적인 관세 인하를 끌어냈던 중국처럼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아킬레스건을 쥔 이란은 전쟁을 끝내려면 배상금 지급과 향후 이란에 대한 침략이 없다는 국제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은 "우리가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전쟁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는 이러한 공격을 반복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방식으로 이 전쟁이 끝나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란의 조건에 합의할지 여부는 둘째치더라도 미국이 이스라엘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이란 핵무기 개발 저지, 이란 정권 교체 등 당초 설정한 목표를 거의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중단하면 이스라엘의 부담이 커진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의 복잡한 관계성을 볼 때 전쟁은 쉽게 끝나기 어렵고 호르무즈 해협 병목현상이 쉽게 해소되긴 어렵다는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모하메드 엘-에리언도 주요 3국(미국, 이스라엘, 이란) 사이의 이해관계 불일치 심화, 에너지 공급망의 고유한 복잡성 등을 이유로 "유가의 극심한 변동성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동맹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호위에 참여한다고 해도 금융시장은 안전한 항행이 이뤄지는지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이란 전쟁이 끝나더라도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번 전쟁 이후 세계 각국이 안정적인 에너지 및 자원 확보에 나설 것이란 이유에서다. 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전통 에너지원을 대체하려면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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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 봉쇄 파장은 원유 가격에 국한되지 않는다. 해협은 화학·비료 교역에서도 글로벌 해상 물동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북반구 봄 파종 시기를 앞두고 나온 해상물류 마비는 식품가격을 끌어올릴 우려도 있다.

석유·가스 부산물인 유황 가격도 급등하고 있는데, 이는 구리 등 금속 공정과 반도체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도체 웨이퍼 냉각에 쓰이는 헬륨 역시 걸프 지역에서 대량 생산된다.

한국은 비축유 방출,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 등을 통해 고유가 대응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은 소비자 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나 길어지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트럼프의 바람대로 전쟁이 오래가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당분간 국제유가가 급등락하며 불안한 흐름을 지속할 가능성, 나아가 유가가 오랜 기간 높은 수준을 지속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국제경제부장)

jhmoon@yna.co.kr

문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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