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시장은 공포의 벽을 타고 오른다고 하는데, 공포가 과도하면 패닉이 오기 마련이다. '공포의 과장'을 항상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중동 사태 등 이미 불거진 공포는 차라리 낫다. 시장은 막연한 공포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사모대출(Private Credit)을 둘러싼 미국 금융시장발 불안이 국내에서도 스멀스멀 퍼지는 작금의 현실이 그렇다.
사모대출 불안의 출발점은 환매 요구 급증이다. 블루아울 등 글로벌 사모대출 펀드에 수십억달러 규모의 환매 요청이 몰렸는데, 일부 대형 운용사가 요청액의 일부만 지급하면서 불안 심리는 더 커졌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시점에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흔들리게 된 신뢰가 펀드런 공포로 확산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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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대출이 '그림자 금융'이란 점도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사모대출은 대출 금리와 담보, 차입자 정보 등이 공개되지 않는다. 자산 가치에 대한 평가도 자의적이라 대출 자산에 부실이 생겨도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진 이유다.
일부 전문가와 '숏포지셔너'로 예상되는 시장 참여자들은 '제2의 서브프라임 위기'로까지 규정하고 있는 데, 지나친 과장이다. 사모대출시장의 리스크를 경계할 필요는 있지만, 서브프라임 사태와 동일선상에서 논하는 것은 현실 왜곡의 의도가 있다는 의심이 든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이번 사모대출 위기의 가장 큰 차이는 은행 익스포저와 파생상품 규모 등에 있다. 서브프라임 위기 당시 미국 은행들은 막대한 익스포저에 노출됐다. 당시 모기지 손실의 약 3분의 2가 은행권에서 발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부채담보부증권(CDO)과 합성CDO 등으로 구조화되면서 위기는 증폭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잔액은 위기 직전 1조3천억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여기에 사이즈 가늠이 어려운 CDO와 합성CDO는 은행의 부실과 신용위험을 더 키웠고, 결국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장됐다.
지금의 사모대출 시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글로벌 사모대출 규모는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잔액에 육박하지만, 은행권의 익스포저는 2024년 말 기준 960억달러 수준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은행의 손실규모는 4조달러를 웃돌았다. 사모대출 파생상품은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정도로 서브프라임과 비교해 매우 제한적이다. 파생상품의 비중도 현물의 1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모대출 시장의 위험이 특정 투자자나 펀드에 집중될 수 있으나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금융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위험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문제는 일부 전문가와 숏포지셔너들이 불확실성을 과도하게 부풀려 시장 공포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브프라임의 재현'이라는 극단적 프레임을 씌워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단기적 이익을 노린다. 이는 사실상 '위기 장사'나 다름없다. 숏포지셔너들의 전략은 단순하다. 위기론을 퍼뜨려 시장을 흔들고, 공포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서면 그 틈을 타 수익을 챙긴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시장의 건전성을 해치고, 투자자들의 합리적 판단을 왜곡한다. 근거 없는 위기론은 금융시장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사모대출 투자를 둘러싼 우려가 증폭하는 것도 과장된 공포의 결과물일 수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내에서 증권사를 통해 판매된 사모대출 잔액은 17조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는 투자의 영역이다. 개인과 연기금 등이 예금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며 투자한 금액이다.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회사 고유자금의 투자 규모는 크지 않아 만에 하나 사모대출이 파산하더라도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작다. 금융권의 직접 노출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서브프라임 때와 달리 실질적 충격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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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월가의 혼란을 반면교사로 삼아 비은행권 자산 평가의 투명성을 높이고 유동성 대응력을 재점검해야 한다"면서도 "이번 사모대출 사태를 2008년식 금융위기와 동일선상에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국내 금융권은 금융위기를 지나며 규제와 감독체계가 과거보다 훨씬 강화된 상태다. 글로벌 불안이 심리적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실질적 충격은 제한적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사모대출 시장의 리스크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서브프라임 위기'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은 지나친 공포 마케팅이다. 위기를 경계하는 것과 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당국자와 시장 참여자 모두 위기를 과장하는 목소리에 휘둘리기보다 냉정한 현실 인식과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금융부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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