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xAI(엑스AI), 테슬라, 스페이스X의 역량을 총집결한 초대형 반도체 생산 기지 '테라팹(Terafab)' 건설을 공식화했다.
전 세계 인공지능(AI) 연산량의 50배에 달하는 1테라와트(TW)급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이번 발표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전례 없는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를 두고 '단기적 수요 폭발'이라는 기회와 '장기적 공급망 재편'이라는 위협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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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전력망 한계 넘는 '1TW' 구상…80% 우주로
머스크가 제시한 테라팹의 핵심은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니라, 전력과 인프라 한계를 넘어 인공지능(AI) 연산 능력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데 있다.
테라팹의 목표 연산 능력인 1TW는 현재 전 세계 AI 연간 연산량(약 20GW)의 50배를 상회하는 압도적 수치다.
주목할 점은 이 막대한 컴퓨팅 파워의 80%가 지상이 아닌 '우주 애플리케이션'에 배정된다는 대목이다.
머스크는 지구 전력망의 물리적 한계로 인해 대규모 AI 컴퓨팅의 지상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는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체계와 결합된 우주 기반 AI 데이터센터 시대를 예고한 것으로, 반도체 수요의 패러다임이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됨을 의미한다.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할 테라팹은 단순히 칩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다. 로직과 메모리, 패키징은 물론 리소그래피(노광)와 마스크 수정 제작까지 한 장소에서 처리하는 '올인원(All-in-one)' 시스템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설계 반복 속도를 기존 대비 10배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머스크, 삼성 등 "감사하지만 너무 느리다"
머스크는 이번 발표에서 삼성전자, TSMC, 마이크론 등 기존 파트너사들을 향해 "매우 감사하다"면서도 "기존 공급망이 확장할 수 있는 최대 속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느리다"고 단언했다.
이 발언은 국내 업계에 두 가지 함의를 전달한다.
우선, 단기적 수혜 가능성이다. 테라팹이 완공되기 전까지 테슬라와 xAI의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국내 선두 업체들 뿐이다. 특히 1TW급 연산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차세대 2나노 파운드리 공정에서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은 당분간 공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실장은 "머스크의 행보는 단기적으로는 그만큼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라며 "원하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일은 단기간에 따라올 수 없는 부문이라 기존 기업과 협력은 유지하면서 팹 건설도 같이 가져갈 것으로 예상돼 반도체 시장이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TSMC가 수십년간 축적한 공정 노하우, 장비 운용 경험, 수율 관리 역량 등은 단기간에 복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라며 "머스크도 스스로 반도체 제조 경험이 없다는 점, 그리고 과거 프로젝트에서 당초 일정 대비 상당한 지연이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머스크의 홀로서기…장기적 '게임체인저'
그러나 머스크의 행보는 결국 장기적인 '탈(脫) 공급망' 선언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부문이다.
머스크가 공급망 대체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속도 차이를 이유로 내재화를 추진하는 만큼 결국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번스타인(Bernstein)은 1TW 규모의 연산 능력을 확보하려면 매월 최대 1천800만 장의 웨이퍼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테슬라가 이 중 일부라도 자급자족에 성공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및 범용 메모리 시장 점유율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는 테라팹을 머스크 생애 가장 어려운 도전으로 평가하면서도, 테슬라가 '옵티머스' 로봇용 칩 등 연간 2억 개 이상의 수요를 자급할 경우 기존 파운드리 시장을 직접적으로 잠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텍사스 테라팹이 미국 내 2나노 생산 능력을 확보할 경우, 아시아 중심의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하려는 미국 정부의 전략적 지지를 등에 업고 삼성전자와 TSMC를 위협하는 강력한 지정학적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텍사스 공급망 보유 기업에 '러브콜'…인프라 선점 경쟁
업계에서는 테라팹 건설에 따른 '낙수효과'도 주목하고 있다.
테슬라가 이미 인프라, 모듈, 공급망 관련 인력 공고를 시작하며 프로젝트 검토에 착수한 만큼, 텍사스 지역에 생산 거점을 가졌거나 해외 파운드리 투자 경험이 풍부한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에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테라팹이 지향하는 '한 장소 전 공정 처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극자외선(EUV) 노광 관련 장비와 마스크 제작 기술력을 갖춘 파트너사가 필수적이다. 삼성전자의 테일러 팹 인근에 위치한 협력사들이 테슬라의 새로운 공급망 체계에 편입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머스크의) 중장기 수요에 대한 언급은 긍정적이며 해외 파운드리 투자 진입 경험이나 텍사스에 공급망을 갖춘 업체들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연상 충남대 반도체융합학과 교수는 "미국에 현재 반도체 팹을 건설할 수 있는 업체나 인력이 없는 것으로 안다"라며 "이 때문에 협력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를 잘할 수 있는 국내 업체들에게는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관건은 '속도'와 '기술력'이다. 머스크가 지적한 '느린 속도'를 극복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정 효율화와 양산 속도 제고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테슬라가 자체 팹을 갖추더라도, 세계 최고의 수율과 최첨단 공정에서 국내 기업들이 앞서 나간다면 테슬라는 '경쟁자'인 동시에 '영원한 고객'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ysyoon@yna.co.kr
윤영숙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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