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기업에 투자한 주주에게 3월은 설레는 시기다. 지난해 사업 성과가 좋았던 곳은 어떤 환원정책이 나올까 하는 마음에, 성과가 좋지 않았던 곳은 어떤 반성문을 써왔을까 하는 마음에 주주총회장을 찾는다. 지난 25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주총장을 찾은 주주의 마음은 즐거운 설렘이었을 것이다. 하이닉스 셔틀 세력권이라는 말이 부동산업계에 떠돌 정도로 막대한 인센티브를 임직원에 지급한 회사다. 다락같이 오른 주가 외에 당연히 주주환원에 대한 기대가 있을 법했다.
(서울=연합뉴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25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제78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3.25 [SK하이닉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이런 주주에게 회사는 날벼락 같은 선언을 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사장)은 주총장에서 주주를 향해 "회사는 순현금 100조 원 이상을 확보하고자 한다"며 "이를 통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필요한 투자를 집행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곽노정 사장은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글로벌 고객사들의 주문을 적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며 "충분한 수준의 현금은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적 자산인 동시에 시장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한 훌륭한 보험"이라고 말했다.
주주에게 있어 하이닉스는 어떤 기업인가. 작년 사업보고서 기준 하이닉스는 주당 3천원을 배당해 총 2조1천억원을 사용했다. 전년 배당액이 2천204원이니 무려 36%나 배당금을 늘렸다. 순이익 42조9천억원과 비교한 현금배당 성향은 4.9%였다. 훌륭한 주가와 달리 배당에서는 물을 켜게 된다. 회사는 지난 1월 자사주 1천530만주를 소각했다. 시장가치 기준으로는 13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돌려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은 매입시점에서 이미 효과가 났다고 보는 게 통설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유리시키는 바람에 생긴 착시효과다. 그런 착시효과마저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설비투자 재원마련을 위해 추진하는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은 신주 발행방식이 유력한 까닭이다.
(서울=연합뉴스) 원형민 기자 =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000660]는 전장 대비 5.68% 오른 100만5천원에 거래를 마쳤다. circlemin@yna.co.kr
SK하이닉스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러지를 살펴보자. 이 회사는 지난 2025회계연도에 주당 0.460달러를 배당해 총 5억2천700만 달러를 사용했다. 당기순이익이 85억3천900만 달러니 현금배당성향 6.17%로 하이닉스보다 살짝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배당재원이 되는 잉여현금흐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이크론 역시 지난해 설비투자가 활발했던 까닭에 영업활동현금흐름 175억2천500만 달러 중 158억6천100만 달러를 설비투자에 사용했다. 그래서 남은 잉여현금흐름은 16억6천400만 달러. 그러니까 마이크론은 배당가능재원의 32%를 주주들에게 돌려준 셈이다.
마이크론은 최고경영자(CEO)에게 자신이 받는 보수의 여섯배에 달하는 주식을 보유하도록 요구한다. 지난 2024 회계연도까지는 다섯배였으나 주주가치 제고와 책임경영을 위해 기준을 더 강화했다. 이런 마이크론의 CEO가 회사의 안정성을 들먹이며 100조원의 현금을 쌓아두겠다고 말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2025년 기준 SK하이닉스의 자본총계는 117조3천억원이다. 그러니까 100조원의 현금을 쌓아두겠다는 말은 회사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는 자본을 놀리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지난 2025년 기준 35.6%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3.1%까지 떨어질 수 있다. 올해 영업이익이 증권가의 전망대로 150조원을 기록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100조원의 현금을 설비투자에 사용하거나 주주 환원한 것보다 ROE는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가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1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superdoo82@yna.co.kr
100조원 순현금 전략은 곽노정 사장이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했던 말도 다시 음미하게 한다. 곽노정 사장은 작년 12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산업 육성전략 보고회'에 참석해 "SK하이닉스가 돈이 많으니 투자금을 댈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돈을 벌어 투자하려면 장비를 가져놓고 세팅하는 데 3년이 걸린다, 그러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고 말했다.
벌어서 투자하면 시기를 놓치니 외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다른 곳에서는 흔들림 없는 투자를 위해 벌어 놓은 돈을 쌓아두겠다고 말한다. SK하이닉스의 순현금 100조원 전략은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산업부장)
한편, SK하이닉스는 이날 송고한 칼럼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의견을 보내왔다.
순현금 100조원 목표는 과거 시황 악화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어떤 업황에서도 보유한 현금으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면 주주가치 제고에도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비롯됐다.
아울러 지난 25일 주주총회에서 곽노정 사장은 실적이 개선된다면 강화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추가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추가적 주주환원을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ADR 관련해 규모와 방식 등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연내 상장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ADR 상장 심사 절차가 시작된 만큼 국내외 법령에 따라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여러 주주 의견을 반영해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 구체적 내용 확정되면 주주에게 밝힐 기회를 가질 것이다.
spnam@yna.co.kr
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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