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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한달] 기름 안 나는 나라 통감…상수된 비상 대응

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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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원유 위기 '경계' 발령…호르무즈 봉쇄가 바꾼 에너지 지도

(서울=연합인포맥스) 이재헌 기자 = 중동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초기 시장을 덮쳤던 일시적 충격은 이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강요하는 '상수'가 됐다.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석유 분야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하며 국가적 대응 역량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은 비축유 맞교환(SWAP)과 수입선 다변화, 수천억 원 규모의 예산 투입이라는 방어막을 세워 장기화하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이다.

한국석유공사 서산 비축기지 전경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나프타 사수 작전에 4천695억원 추경 '수혈'

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부터 원유에 대한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했다. 천연가스 역시 '관심'에서 '주의'로 한 단계 올라섰다. 모두 사상 초유의 조치다.

그만큼 중동 전쟁의 장기화가 우리 경제에 가시적인 위협으로 다가왔음을 시사한다. 경보 격상의 결정적 배경은 물류의 동맥경화다. 지난달 20일 이후 열흘 넘게 중동발 원유 도입이 전면 중단되면서, 수송경로 봉쇄에 따른 도입 차질이 실물 경제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취약성이 전쟁 한 달 만에 가감 없이 드러나게 됐다.

원유 도입 차질은 산업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는 뇌관이 됐다. 특히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Naphtha) 수급 불안이 심각하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고무, 합성섬유뿐만 아니라 의약품 포장재 등 국민 생활 필수품의 핵심 원료다.

정부는 우선 대체 나프타 도입 시 발생하는 수입 단가 차액을 지원하기 위해 이번 추가경정예산(추경)에서 4천695억원을 편성했다. 중동 대신 미주나 아프리카 등 원거리에서 나프타를 들여올 때 발생하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국가가 나누겠다는 취지다. 동시에 나프타 수출 제한 조치를 통해 국내 생산 물량의 내수 전환을 추진한다.

[출처: 연합인포맥스 AI 인포그래픽]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에서 아랍에미리트(UAE)는 한국의 가장 믿음직한 우군으로 등판했다. 정부는 특사단 파견 등을 통해 UAE로부터 총 2천400만배럴의 원유를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긴급 도입분 600만배럴 중 200만배럴은 지난달 30일 국내 하역을 시작했고, 잔여 물량도 이달 중순 입고될 예정이다. 추가 합의된 1천800만배럴 역시 순조롭게 도입될 전망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부는 위기 경보 격상에 맞춰 한 단계 높은 대응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 중첩 방어막 세운 정부…적정 재고 경영의 확산

우리나라가 보유한 약 1억배럴(200일분 이상)의 전략 비축유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선이다. 정부는 이 '최후의 보루'를 아끼면서도 시장에 원유를 공급하는 정교한 전술인 '비축유 스와프(SWAP)' 제도를 가동했다. 정부 비축유와 정유사가 해외에서 대체 도입할 원유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일시적 수급 공백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천연가스(LNG) 분야도 위기경보가 '주의'로 격상돼 수요 관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중동 의존도를 20% 미만으로 낮추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카타르산 비중을 14%까지 줄였다. 그 빈자리는 직접 투자해 확보한 지분물량으로 채운다.

[출처: 연합인포맥스 AI 인포그래픽]

중동전쟁 한 달, 국내 경제는 불확실성을 비용으로 수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공공분야 차량 부제는 홀짝제를 예고했다. 대기업도 이에 동참해 강력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시행한다. 민간의 캠페인도 강화된다. 효율성만을 쫓던 '적기 생산(JIT)'은 이제 생존을 위한 '적정 재고(JIC)' 전략으로 대체됐다.

석화업계는 나프타 도입선을 아프리카와 북미로 급히 넓혔고, 자동차와 가전 업계는 핵심 부품 재고를 평시 대비 늘려서 확보하며 공급망 붕괴에 맞서고 있다.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불확실성을 상수로 둔 생존형 공급망 구축이 경영의 최우선 과제가 된 결과다.

대기업 관계자는 "이번 전쟁은 코로나와 리스크의 물리적 성격이 다르다"며 "단순한 물류 지연을 넘어 에너지 주권과 직결된 원료의 실질적 확보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jhlee2@yna.co.kr

이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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