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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결산①] "찻잔 속 태풍"은 옛말…자본시장 뒤흔든 주주권의 파고

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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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주총 한국자본시장 본격적인 주주시대 서막…행동주의의 대중화와 질적 진화

[※편집자주 = 올해 정기주주총회는 행동주의가 자본시장의 '뉴노멀'로 안착하며 본격적인 주주 시대의 서막을 알린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사인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 대법원 판례가 적용돼 경영진의 '셀프 보수'에 제동이 걸렸고, 주총 전 비공개 대화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를 이끌어내는 성숙한 합의 사례도 다수 등장했습니다. 연합인포맥스는 자본시장의 체질을 바꾸고 있는 행동주의 사례를 결산하고 개정 상법 시행으로 한층 거세질 주주권 행사의 파도를 짚어봅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올해 정기주주총회(주총)는 한국 자본시장 역사상 본격적인 '주주 시대'의 서막을 알린 시기로 기록될 전망이다. 과거 일부 상장사에 국한됐던 행동주의 캠페인은 이제 중견기업과 코스닥 시장까지 전방위로 확산하며 '자본시장의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확대 논의 등 제도적 훈풍을 타고 주주들은 이사회 진입부터 보수 체계 감시까지 공세의 수위를 높였고, 기업들은 정관 변경이라는 방패를 들고 방어에 나섰다.

◇개정 상법이 깔아준 판…행동주의의 대중화와 질적 진화

올해 주총의 가장 큰 특징은 행동주의의 저변 확대와 질적 진화다. 일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면서 행동주의 펀드뿐만 아니라 소액주주 연대와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졌다. 이번 시즌 주주제안이 제기된 기업은 40곳을 넘고 안건은 150건을 상회하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캠페인의 양상도 과거 단순히 배당 확대를 요구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기업 거버넌스의 본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가비아에서 이사회 2석을 확보함과 동시에 '이사 보상체계 공개'라는 권고적 주주제안을 가결시켰다. 회사 측이 안건 상정을 거부했으나 법원이 사실상 주주 손을 들어준 국내 첫 사례로, 향후 권고적 주주제안이 활성화될 신호탄이 됐다.

덴티움에서는 상장사 사상 최초로 주주가 제안한 이사 보수한도가 회사안을 제치고 가결되는 등 경영진의 '성역'으로 여겨졌던 영역까지 주주의 감시망이 뻗쳤다.

시가총액 10조 원이 넘는 DB손해보험에서는 얼라인이 추천한 민수아 후보가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

◇자본 효율성에서 사익 편취 감시까지

기업의 자본 배치 효율성에 대한 주주들의 감시는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특히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들이 주 타깃이 됐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삼영전자공업의 3천억 원대 순현금과 0.4배에 불과한 PBR을 지적하며 자사주 취득과 감사 선임을 제안했고 결국 주주제안 감사 후보(손우창 변호사)를 선임시키는 성과를 냈다.

피보나치자산운용이 주도한 코메론의 대규모(405억원) 자사주 매입 가결 역시 자본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의 흐름을 반영한다.

VIP자산운용은 월덱스에 주주 배당금 총액(16억 원)보다 이사 3인의 보수(22억5천만 원)가 더 많은 점을 꼬집어 이사보수규정 제정안 부결을 이끌어냈다.

대주주 위주의 의사결정에 대한 치열한 공방도 벌어졌다.

머스트자산운용은 리파인 주총에서 지배주주를 위한 고금리 교환사채(EB) 발행과 주주들에게 세금 부담을 전가한 '반쪽짜리 과세 배당'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측 이사 선임에 대한 전체 의결권 기준 찬성률은 48.7%에 그쳤는데, 최대주주 지분(47.96%)을 제외하면 일반 주주의 찬성이 1%에도 미치지 못한 셈으로 경영진을 향한 싸늘한 민심이 입증됐다.

◇방패 두른 기업들…정관 변경 통한 선제적 방어

주주들의 공세가 거세지자 기업들도 발 빠르게 방어에 나섰다. 특히 내년부터 본격 도입될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정관을 뜯어고치며 경영권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

삼성전자, GS, 오뚜기 등 다수의 기업이 이사 임기를 가변화하는 '시차임기제'를 도입했다. 임기가 유연해지면 주주제안 이사의 임기를 축소하는 등 개정 상법의 효과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사 정원을 줄이는 정관변경도 잇따랐다. 카카오(11인→7인), 엘에스일렉트릭(9인→5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사 자리가 줄면 집중투표를 통한 주주제안 이사 진입 여지도 좁아진다.

효성중공업은 '그룹사 3년 이상 경력'을 이사 후보 자격 요건으로 신설하려다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부결되기도 했다.

자사주 처분 규정도 촘촘하게 신설됐다. SK이노베이션, 셀트리온, 하이브, 카카오 등이 '경영상 목적'을 명분으로 이사회 결의만으로 자사주를 처분할 수 있는 조항을 앞다투어 마련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의 변화를 '본게임을 위한 예고편'으로 평가한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 조항들이 내년 주총부터 본격 적용되기 때문이다. 오는 7월 시행되는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합산 3% 룰 강화와 9월 이후 적용되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내년 주총의 판도를 바꿀 핵심 변수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이번 주총에서 아쉽게 부결된 주주제안이 많았지만, 내년에는 한층 더 강력한 동력을 얻을 것"이라며 "제도적 무기가 더해지는 만큼 주주권 행사도 더 용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생성 이미지]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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