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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주주가치 이정표 세운 두산에너빌 210분 주총

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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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국내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위 기업 중 경영권을 본의 아니게 중도 상실했었던 기업이 세 개 있다. SK하이닉스[000660]와 기아[000270], 그리고 두산에너빌리티[034020]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0년을 지나면서 2022년까지 23개월 동안 채권단 관리 시절을 겪었다. 전신인 두산중공업을 포함해 60년 역사상 가장 뼈아픈 암흑기였다.

탈원전의 아픔 속에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주가가 2천100원대까지 떨어졌다. 지금과 비교하면 45분의 1 수준이다. 2008년 주가가 최근과 비슷하니 약 20년 만에 재도약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지난달 개최한 두산에너빌리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어둠의 긴 터널을 묵묵히 견뎌낸 주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30년 넘게 투자했다는 한 노(老)주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과거의 상처를 꺼냈다.

"2천500주를 6만원에 샀단 말이에요. 나중에 1억5천만원이 600만원이 됐어요. 미치죠. 그걸 다 견뎠단 말이야."

이 주주를 비롯해 이날 주총장에는 1천명에 가까운 주주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두산에너빌리티를 믿고 기다린 주주들은 최근 실적과 기업가치 턴어라운드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총에서 인사말하는 박상현 사장

[출처: 두산에너빌리티]

주총의 진정한 화룡점정은 경영진의 태도에서 완성됐다. 박상현 사장은 주주들의 거친 발언과 디테일한 질문을 단 한 차례도 가로막지 않았다. 담당 임원을 직접 지목하며 설명 의무에 소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주총은 총 3시간30분이 소요됐다.

특히 까다로운 법령을 들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내는 주주에게 박 사장이 던진 한마디는 이례적이었다. "말 안 자릅니다. 천천히 하세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그야말로 무제한 주총을 표방했다. 주주들은 향후 투자계획부터 미국 시장 가스터빈 수출 성과, AI(인공지능)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한 생산성 향상 방안까지 궁금증을 모두 털고 주총장을 나갈 수 있었다.

주주들은 박수와 감사로 화답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한 주주는 "고생한 임원진께 큰 박수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다른 주주는 '제가 몇 년 전에 주총이 왔었을 때는 노조원들이 아주 진을 치고 난리였는데, 현재는 일심(一心)이 돼서 반갑다"라고 전했다.

노조 지회장의 발언도 묵직한 울림을 줬다. 그는 "이사 보수 한도 상승에 동의한다"며 "임직원이 고통을 감내했던 부분이 다시 한번 평가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사가 위기를 함께 극복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총

[출처: 두산에너빌리티]

두산에너빌리티는 올해를 소형모듈원전(SMR) 시장 성장의 원년으로 선언했다. 14조7천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수주 실적은 그 담보물이다. 하지만 이날 주총장에서 확인한 가장 큰 자산은 수주 잔고가 아닌 '주주의 신뢰'였다.

기업 재건의 진정한 완성은 재무제표의 흑자 전환이 아니다. 주주의 고통을 경청하고 경영의 과정을 투명하게 설명하며, 끝내 그들의 박수를 끌어내는 과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여준 210분의 노컷 기록은 기업 거버넌스가 나아가야 할 주주 존중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산업부 이재헌 차장)

jhlee2@yna.co.kr

이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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