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증권 1호 개발자' 용재현 서버개발자
종일 따라다녀보니…증권사도 빅테크처럼 일한다?
[사진: 연합인포맥스]
(서울=연합인포맥스) 신민경 기자 = 콧대 높은 여의도 증권가에서 '비주류'의 반란이 시작됐다. 인공지능(AI) 개발자들 얘기다. 주변부에 머물던 이들이 회사의 핵심축으로 올라서고 있다.
화이트칼라의 상징이었던 증권맨들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AI 덕에 업무 부담은 크게 줄었지만, 역할까지 같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크다. 최근 미국 한 리서치 업체는 "2년 뒤 글로벌 지능위기가 온다"고 예고해 월가를 충격에 빠트렸다. 귀했던 인간의 지능이 AI로 인해 무한정 공급되면서 금융계와 산업계가 고통스러운 재편을 겪을 거라는 섬뜩한 경고였다.
위기일까 기회일까. 국내 증권가도 갈림길에서 일단 발부터 담갔다. 사내 챗봇을 만드는가 하면 AI 아나운서를 활용한 유튜브 콘텐츠도 늘고 있다. 채용공고 우대사항에 직무 불문하고 '바이브 코딩 유경험자'를 써 넣는 회사도 많아졌다.
다만 AI를 활용해 기막힌 투자 서비스를 내놓진 못했다. 엉덩이가 무거울 대로 무거워진 증권 앱에서 틀을 깨는 시도가 나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메기되겠다"…제로베이스서 만드는 MTS
이런 가운데 넥스트증권이 도전장을 던졌다. 아예 모든 업무 중심에 AI를 두고 제로베이스에서 투자 서비스를 만들어 보겠다는 계획이다. 사명(Next)에서는 기존 증권사 모델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토스증권 수장 출신인 김승연 대표는 취임 당시인 2024년 말 연합인포맥스에 "이미 완성형 앱을 둔 기존 증권사에서는 AI 기반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시도하기 어렵다"며 "무(無)에서 시작해야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이 많다. 현실감 있는 계획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일 넥스트증권 '1호 개발자'의 하루를 따라다녀 봤다. 주인공은 용재현 테크본부 프로덕트엔지니어링팀 엔지니어로, 업계에 발을 들인 지 8년차가 된 1992년생 젊은 개발자다. 티맥스소프트에서 초기부터 협업 플랫폼을 설계·개발하며 팀장으로 성장했고 직전까지는 이더리움 기반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서버 개발을 경험했다. 넥스트증권에는 지난해 3월 합류했다. 이 회사는 전 직원 150여 명 중 20%이 개발직군일 만큼 용 개발자 같은 '공대생' 비중이 높다. 개발이 곧 경쟁력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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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개발자는 "기존 MTS는 기능만 덧대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개발자 역할이 시스템 유지보수에 그친다"며 "하지만 이곳에선 AI와 콘텐츠를 처음부터 핵심에 놓고 설계하고 있다.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데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임무가 생길 때마다 스쿼드(프로젝트 팀)을 만드는데, 용 개발자는 현재 스튜디오 팀에서 MTS 내 영상 콘텐츠를 자동 생성하는 기능을 만들고 있다. 투자자들이 유튜브 쇼츠나 틱톡 같은 짧은 영상을 보고 나서 제자리에서 매매까지 할 수 있는 MTS 환경을 개발하는 중이다. 예컨대 어느 투자자가 AI 관련주 중 하나인 '코어위브'를 MTS에서 자주 검색하거나 매매한 이력이 있다면, 그의 MTS 화면에는 관련 종목들의 숏폼 영상을 띄우는 방식이다. 이런 기능들이 담긴 AI 기반의 MTS를 하반기 중 투자자들에게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스타트업계 '님' 호칭 문화, 증권사서도?
오전 8시50분. 용 개발자가 서울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IFC)의 '쓰리(Three) IFC' 오피스 12층으로 출근했다.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직위가 따로 써 있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게 이곳의 불문율이다. 대리, 과장, 차장 등의 호칭에 익숙한 기존 증권사들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문화다. 모두가 서로를 성을 떼고 '님'을 붙여 불러야 하는데, 기자도 예외는 아니랬다. "재현님." 이 한마디를 꺼내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용 개발자는 출근길 사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곁에 두고 오전 업무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내 메신저와 개발 헙업 플랫폼인 '깃허브' 알림을 확인한다. 그런 뒤에는 업무 관리 툴인 지라(JIRA)를 켜서 오늘 해야 할 작업 목록과 버그(오류) 알림들을 차례로 점검한다. 전날 개발한 것 중 오류가 발견되면 자동 알림 형태로 '티켓'들이 발행되는데, 우선순위부터 차례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옆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니 사내에서 그가 속한 메신저 방은 상당히 많았다. 현재 소속된 스쿼드 팀은 매일 15분 안팎으로 메신저 회의를 진행하는데, 이를 '데일리 스크럼'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다른 부서와의 협업도 대부분 실시간 댓글을 주고받으며 진행된다. 하루에도 수차례 열릴 법한 대면회의를 이런 방식으로 대체하면서 회의 준비와 이동 시간을 크게 줄였단 설명이다. 잡담 방도 있다.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 대화 중 유용한 영상을 발견하면 자유롭게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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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척지를 뚫는 설렘"…이곳을 택한 이유
오전 11시. 한참 개인 개발에 집중하던 용 개발자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의도 직장인답게 점심이 이른 편이다. 원센티널 빌딩 지하의 일식당에 가기로 했다. 테크본부 소속 박진주 프론트엔드 개발자, 서동진 데이터 엔지니어가 함께 했고 홍보실의 유혜리 매니저와 기자도 동행했다. 매일 식당을 고르는 일만큼 고역도 없는데, 팀에는 다행히도 결단이 빠른 서 개발자가 있다. 메뉴 선정은 대체로 그의 몫이다.
주문한 돈가스가 나오기 전 스몰토크를 했다. 모두 크고 안정된 기업에서 넘어 온 사람들이었다. 소형 증권사를 택한 이유를 물었다. 이들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렘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카카오뱅크와 토스 출신인 서 개발자는 "AI 기술가 철옹성 같던 증권업계도 흔들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개발자로서 크게 성장하는 경험을 갖고 싶어 택했다"고 말했다. 비상장주식 거래소에서 8년여를 근무하다 옮겼다는 황 개발자는 "미개척지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데서 오는 뿌듯함을 안다"며 이직 배경을 설명했다. 박 개발자는 "직전까지 업장의 포스(POS)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새 도전을 위해 합류했다"며 "증권사도 테크기업처럼 일할 수 있구나, 와보니 체감했다"고 말했다.
이날 대화 주제는 증권맨들 사이에서도 열풍인 '클로드'(Claude)였다. MCP 프로토콜, 옵시디언, 플러그인 스킬 마켓플레이스…고급 단어들이 쏟아지자 기자는 결국 대화에 끼기를 포기하고 눈앞의 돈가스에 집중했다. 용 개발자는 "밥을 먹으면서 최신 AI 트렌드를 공유한다. 신기술을 어떻게 업무에 녹이고 개발 생산성을 높일지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 게 재밌다.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 역시 화두였다. AI가 사스(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대거 종말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서 개발자는 미국 소프트웨어 업종의 주가 부진은 필연적이라고 봤다. 그는 "사스 기업들이 맡아온 기능이 하나둘씩 AI에 흡수되면서 중간 레이어 자체가 빠르게 얇아지고 있다"며 "특화된 서비스야 경쟁력을 살릴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범용 사스 기업들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자의 분석이라 더 쫄깃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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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나오니 정오를 조금 넘겼다. 필수 코스처럼 갔던 '커피 타임'은 생략됐다. 팀원들은 남은 점심시간을 알아서 보냈다. 산책을 나가거나 혼자 커피를 마시거나 잠에 들거나 제각각이었다. 함께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 시간을 쓰는 분위기였다.
물론 어느 팀은 식후 커피를 걸고 가위바위보 내기를 한다고 한다. 특별한 건 AI를 동원한다는 점이다. 승률과 무관하게 100% 재미로다. 팀원들이 각자 챗GPT나 클로드, 제미나이 등에 '무엇을 낼지' 물어본 뒤 나온 답대로 내는 식이다. 그런데 결과가 대체로 바뀌질 않아서 한 사람이 매번 돈을 낸다고 한다.
◇ 개발자들 회의서 나온 뜻밖의 건강론
오후 1시, 각 직군 개발자 8명이 회의실에 모였다. 일명 주간 '엔지니어링 데이' 회의를 위해서다. 개발 과정 중 겪은 어려움이나 공유하고 싶은 사례들을 가벼운 분위기에서 발표하는 자리다. 때로는 개발과 무관한 내용이 주제로 오르기도 한다.
총 4명이 발표를 맡았다. 이 중 3명이 '노트북(Notebook)LM'으로 발표 자료를 만들어 왔다. 이 주제를 다룬 유튜브 영상 링크와 보고서를 노트북LM에 올리면 요약본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구글 '제미나이'로 가져와 슬라이드를 생성하면 끝이다. 30분만 들여도 발표 자료가 뚝딱 만들어지는 셈이다. 다만 AI가 만든 자료라 중간중간 오타가 발견됐는데 그때마다 회의실에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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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 기자의 이목을 끌었던 건 이날의 유일한 비개발 주제인 '개발자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였다. 발표를 맡은 우지혜 벡앤드 개발자는 하루를 시스템화해서 건강을 챙기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유했다. 그는 "매일 러닝(달리기)으로 체력을 다지지만 운동이라기보다는 '기분 전환 도구'에 가깝다"며 "밥 한 공기도 못 먹을만큼 유약했던 때가 있었는데 한강을 걸으면서 매일 기분을 회복했다. 결국 체력 회복으로 이어지더라"고 말했다.
식습관도 강조했다. "먹어야 할 건 곁에 두고 먹지 말아야 할 건 아예 사놓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를 위해 며칠치 식사를 미리 소분해 뒀다가 끼니마다 꺼내 먹는 '밀프렙'을 실천한다고 했다. 팀원들은 완벽주의적인 우 개발자의 생활습관에 놀라며 "2탄으로 냉장고를 공개해달라", "거북목 없는 비결도 알려달라"고 재촉했다.
개발자도 결국 오래 앉아 버티는 직업이다. 개발 연습만큼 정신력과 체력 관리도 중요하다. 우 개발자는 또 "건강과 커리어 모두 단거리가 아닌 장기전"이라며 "100%가 아닌 80%만 채우려고 해보라"고 조언했다. 일에 매몰되기 쉬운 만큼, 적절히 내려놓는 습관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엔지니어링 데이' 중 우지혜 개발자의 건강론 영상[https://youtu.be/QBLQWNuBfI8?si=R5aUNoPQUUl6sAdS]
◇ "숏폼 소비와 매매를 한 번에"…개발자 증권맨의 포부
오후 2시를 훌쩍 넘겨서야 회의가 끝났다. 개인 업무를 보던 용 개발자는 3시를 즈음해 '콘텐츠 플랫폼 PON 솔루션 미팅'을 위해 또다시 회의실로 향했다. 이강희 프로덕트매니저(PM)와 박진주 개발자, 황태림 서버 개발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PM과 기획자, 디자이너 등 각 직군이 한데 모여 의견을 맞춰가는 중요한 자리다.
오후 4시30분부터는 고재도 테크본부장(전무)과의 일대일 미팅이 시작됐다. 매달 한 번씩 진행하는 면담으로, 업무 고충 상담부터 성과 평가까지 폭넓은 이야기가 오간다. 고 본부장은 무신사·카카오뱅크 등에서 플랫폼 개발을 이끈 인물로, 현재는 기술 전략과 신규 서비스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에는 AI가 코딩을 주도하고 사람이 최소한의 조율만 하는 '에이전틱 코딩' 체계를 구상하고 있는데, 초기 단계인 만큼 개발자들과 논의할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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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을 끝내고 나온 용 개발자는 기자에게 AI 숏폼 콘텐츠 데모버전을 보여줬다. 주가 급등락이 나오면 AI가 그 이유가 되는 뉴스나 공시를 실시간으로 찾아 원고를 만든다. 숏폼 영상 제작과 업로드까지 자동화하는 게 목표다. 아직 AI 숏폼을 어떤 방식과 경로로 투자자들에게 노출할지는 고민하고 있는 단계다.
용 개발자는 "증권 시장에서 같은 '금리 인상' 뉴스라도 어떤 때는 악재로, 어떤 때는 경기 자신감을 보여주는 호재로 읽힌다"며 "숫자는 변하지 않지만 시장이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돈의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 뉴스나 정보를 읊어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나리오와 근거를 바탕으로 해석해주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넥스트증권 AI 숏폼 영상 예시 [영상: 넥스트증권 제공][https://youtu.be/ToiDERBTMFQ?si=PyrDsLzYebhoAuEu]
경쟁 상대는 주식 인플루언서들이다. 다만 넥스트증권은 영상 소비뿐 아니라 매매까지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노린다. AI 콘텐츠로만 승부를 보려는 것도 아니다. 투자자 흥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향후에는 인플루언서들과의 협업 콘텐츠도 병행할 계획이다.
자리로 복귀한 용 개발자는 API 스펙 문서를 작성해 프론트엔드 팀원에게 공유했다. AI 스펙 문서란 쉽게 말해 백엔드와 프론트엔드가 서로 어떻게 데이터를 주고받을지 미리 약속으로 정해놓는 것을 뜻한다. 이어서 그는 JIRA 티켓을 보면서 내일 할 일을 정리했다.
오후 6시. 드디어 일과가 끝났다. 개발자의 하루를 따라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가 구사하는 거의 모든 용어가 낯설었다. '개발자의 모국어는 C언어'라는 공대생식 농담이 이제서야 납득이 갔다. 쏟아지는 AI 툴을 틈틈이 공부하고 업무에 활용하는 부지런함도 돋보였다. 그만큼 여의도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지도 체감했다.
용 개발자는 "증권사에 다니지만 아직 '증권맨'이라는 이름은 어색하다"면서도 "개발자이기에 색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여의도의 '메기'가 될 투자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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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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