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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나쁜 타이밍'에 시작한 점도표의 운명은

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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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10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다만 이것이 계속될 거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한국형 점도표 정책의 연속성을 묻는 말에 답하는 도중 나온 발언이다. 지난 2월말 금통위서 처음 도입했을 때 시장금리가 많이 올라갔던 터라 점도표가 금리 안정에 도움을 줘 타이밍상으로는 좋게 시작을 했다고 언급한 데 이어서 나온 발언이다.

이같은 발언 뒤에는 2월에 있었던 점도표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 담겼다.

금리 전환기에 시장의 기대와 어긋났을 때나 채권투자자 입장에서는 금리를 올리는 쪽으로 소통이 이뤄지면 비판적 견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점도표가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아니라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을 마치려는 찰나 한은 관계자가 단상 쪽으로 뛰어왔고, 공보관에게 귓속말을 전한 후 이 총재가 말을 바로 잡았다.

그는 "제가 포워드 가이던스가 계속되지 않을 거라고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몇차례 수정을 거쳐 배포된 한은의 기자간담회 최종본에는 '다만 이것이 계속될 거냐, 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는 부분은 빠져있었다.

삭제된 발언의 전후 맥락을 보면 '점도표가 앞으로 험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읽히지만, 그 문장만 떼어놓고 보면 '제도 자체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읽힌다.

당시 현장에서 공보관에게 말을 전한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총재의 얘기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재의 의중이 점도표를 중단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들릴 수 있어서 달려갔다는 것이다.

이 총재의 진단이 지나치게 솔직하게 흘러나오는 바람에 점도표의 위태로운 운명도 다시 한번 부각된 셈이다.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서 발언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4.10 [공동취재] ksm7976@yna.co.kr

총재는 간담회에서 이런 말도 했다.

그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성공하느냐 아니냐는 한국은행이 어떻게 하느냐에 못지않게 시장과 언론이 이것이 조건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이 제도가 자리 잡도록 시장과 언론이 이것이 정말 조건부라는 것을 매번 강조해 주시면 감사드리겠다"고 말했다.

제도를 만든 사람이 그 제도의 생존을 언론에 부탁한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중앙은행이 시장과의 소통 방식을 직접 설계하고도, 그 소통이 오해받지 않도록 막는 책임은 언론에 넘기는 구조다.

조건부 전망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은 한은이 할 일이지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그 자체가, 이 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신현송 차기 한은 총재 후보자는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다른 각도에서 봐왔다.

2017년 유럽중앙은행(ECB) 연설에서 "중앙은행이 더 크게 말할수록 자신의 메아리를 들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고, 지난해 외신 인터뷰에서는 "시장은 헤드라인에 고착된다. 작은 글씨의 단서 조항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조건부'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시장은 결국 숫자 하나, 방향 하나만 기억한다. 언론이 매번 강조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이 총재의 부탁과 신 후보자의 철학은 같은 문제를 바라보면서 정반대의 처방을 가리키고 있다.

간담회에서 점도표 설계자인 이 총재가 해당 제도의 연속성에 대해 회의적 뉘앙스를 내비쳤다는 사실 자체가 후임자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총재가 점도표를 없애도 된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는 "당연히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제도의 연속성은 설계자의 바람이 아니라 후임자의 의지로 결정된다.

후임자는 포워드 가이던스의 확대에 대해 오랫동안, 일관되게, 학술적으로도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인물이다.

점도표가 실패한 실험이 되느냐는 제도 자체의 설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점도표도 도입 이후 숱한 오해와 논란을 반복했지만,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핵심은 제도를 안착시키려는 일관된 의지, 그 의지를 지탱할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국형 점도표가 살아남을지는 이제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실패한 실험이 되느냐의 문제는 실험의 내용보다 다음 실험자가 그것을 계승으로 볼지 청산으로 볼지에 달려 있다. (경제부 정선미 기자)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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