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바이오 상폐 무효 1심 원고 승소…감마누 이후 또 패소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한국거래소가 부실기업 신속 퇴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에 또다시 제동을 걸었다. 상장폐지 속도를 높이려는 거래소의 개혁 방안과 법원의 판단이 맞부딪히는 양상이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최근 코스닥 상장사 제일바이오가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낸 상장폐지결정 무효확인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제일바이오는 2023년 임원 횡령·배임 관련 고소를 계기로 감사인이 감사의견을 거절했고, 이에 따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올랐다. 이후 정리매매를 거쳐 올해 2월 상장폐지가 확정되면서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기업의 계속성과 경영 투명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상장폐지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상폐 결정 당시 제일바이오의 자산총계 329억원 중 현금·예금이 약 161억원으로 유동성 위험이 낮았고, 거래소도 여러 차례 재무상태가 건전하다고 인정한 기록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고소 사건들이 무혐의 판단을 받은 점도 상폐 무효의 주요 근거가 됐다.
거래소가 상장폐지 무효 소송에서 패소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 상폐 무효 소송에서 거래소가 패소한 사례로는 2007년 충남방적·국제상사 사건, 2020년 감마누(현 오늘이엔엠) 등이 있다.
2007년 충남방적 사건은 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을 이유로 상장폐지를 자동 결정하도록 한 규정이 위법하다는 판단으로, 대법원에서 상폐 무효가 확정됐다. 같은 해 국제상사 역시 동일한 이유로 1심부터 거래소가 패소했고,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최근 사례인 감마누는 2018년 감사의견 거절로 상폐가 확정돼 정리매매가 시작됐으나, 효력정지 가처분이 인용되면서 절차가 중단됐다. 이후 법원이 "거래소가 추가 개선기간을 줄 수 있었음에도 규정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상폐를 결정한 것은 재량권 일탈·남용"이라며 상장폐지를 무효화했다. 상폐 무효가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감마누는 이름을 바꿔 현재도 거래 중이다.
다만 감마누와 달리 제일바이오는 가처분이 기각되면서 정리매매까지 완전히 마친 상태다.
무효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감마누처럼 자동으로 거래가 재개되는 것이 아니라, 신규 상장심사를 별도로 거쳐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판결은 거래소가 상장폐지 드라이브를 한층 강화하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지난 2월 시가총액 미달, 완전자본잠식, 동전주, 공시위반 등 형식 요건을 강화하고 개선기간을 기존 1년 6개월에서 1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상장폐지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하겠다는 취지였다.
거래소는 1심 결과와 이번 개혁 방안은 별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제일바이오는 과거에 심사가 이뤄지고 상장폐지가 된 회사로, 이번 개혁 방안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별 사안"이라며 "소송은 소송대로 진행하는 것이고, 심사한 내용대로 항소해서 가려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부실한 기업, 시장 건전성을 저해하는 기업은 상장폐지시킨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며 "무조건 상장폐지를 시키는 게 아니라 기준에 따라 심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광중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문제 있는 기업들을 신속하게 퇴출하는 것은 자본시장 건전성 제고 측면에서 필요한 조치"라면서도 "대주주나 경영진이 소액주주 축출 내지 염가 매수를 위해 상장폐지를 감수하거나 유도한다는 의심이 끊이질 않는 만큼, 한계기업 퇴출 못지않게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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