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주말 무려 21시간 동안 이어진 미국과 이란의 첫 종전 협상은 결국 아무런 성과없이 끝이 났다. 서로 상당한 입장차만을 확인한 채 끝난 회담에 금융시장은 2주간의 휴전이 계속 이어질 수는 있을지, 2차 협상이 있다면 언제 열릴지 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란의 핵보유 금지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둘러싼 이견이 협상 결렬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미국은 즉각적인 개방을 원하는 반면 이란은 최종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라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협상 결렬 이후 양측은 다시 날선 공방을 주고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모든 선박을 차단하고, 이란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해상교통을 봉쇄하겠다며 역(逆)봉쇄를 선언했다. 현재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자국 원유를 계속 수출하고 있는데, 이를 틀어막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해 이란은 미국에 "현재 (휘발유) 가격을 즐기라"며 "봉쇄로 인해 곧 (갤런당) 4∼5달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가가 더 오를 것이고 이는 트럼프에 더 손해라는 의미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적들이 단 한 번이라도 오판한다면 해협은 죽음의 소용돌이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트럼프의 역봉쇄 조치에 양측의 무력 충돌 위험이 커졌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트럼프 특유의 협상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역봉쇄 선언 직후 국제 유가는 재급등했지만, 13일 아시아 증시는 TACO(트럼프는 항상 물러선다) 가능성에 제한된 하락세를 보였다. 13일 현지시간 기준 뉴욕 증시는 상승했다.
미국과 이란 양측 모두 전쟁을 무한정 끌고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을 두고 세간이 주목하는 한 포인트가 있다. 지금 당장 개방되느냐 마느냐도 중요하지만 향후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됐을 때 그 개방이 과거와 같은 '자유로운 항행' 형태일 것인지 여부다.
이란은 전쟁이 시작된 뒤 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약 30억원)의 통행료를 받고 일부 유조선의 통행을 허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묘한 지점은 미국의 태도인데, 트럼프도 통행료와 관련해 오락가락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에 통행료를 부과하지 말라고 위협하다가도 미국과 이란의 공동 관리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8일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통행료 부과에 대해 "그건 정말 훌륭한 일"이라며 "우리는 (통행료 부과를 이란과의) 공동 사업 형태로 추진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해협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주말 미국과 이란의 협상 결렬 배경에 대해 미국이 해협을 공동으로 관리하자고 제안했으나 이란이 이를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에너지 수송의 요충지를 장악하고 싶은 트럼프의 영토적 야욕 연장선상일 수도, 갈등 와중에도 경제적 이익이 되는 부분에 눈을 번뜩이는 사업가 기질이 발휘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란은 복구·재건 비용을 마련해야 하고 미국은 전쟁에 투입된 비용을 회수하려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국제 해상 통항을 규율하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르면 '자연 해협'에 해당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수에즈·파나마와 같은 '운하'와 달리 통행료 부과가 허용되지 않는다. 국제 질서를 수없이 무시해 온 트럼프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서도 기존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행동을 할지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이란 단독이든, 이란과 미국의 공동 관리든 각국은 벌써부터 통행료 상시화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0일 사설을 통해 "해협을 실효 지배해 항행을 저해하는 전례가 생기면 다른 해협이나 해역에서도 연안국이 자의적으로 관리하는 움직임이 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을 지켜본 중국이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군이 해당 해역에서 실효적인 지배력을 행사해 외국 군함 통항을 규제하는 상황이 자칫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하는 사업에 대해 미국이 이전만큼 강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른다(Maybe never)".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8일자 기사에서 걸프 지역의 석유·가스 수출이 언제 정상 수준으로 돌아올지를 두고 이렇게 분석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통행료가 부과되고 유조선 운영사들이 항로 이용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을 더 많이 지불하게 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수입 흐름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면 자유항행을 기반으로 한 세기 넘게 지속돼 온 세계 무역 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통상부는 통행료가 징수될 경우 국내 기름값이 약 0.5% 인상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며, 이 수치를 크다고 볼지 작다고 볼지는 해석의 영역이라고 밝혔다. 아직 영향력이 크다 적다 말하기 어려운 단계라는 의미로 보인다. 하지만 통행료 징수가 현실화될 경우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듯 '중동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The Middle East Will Never Be the Same)"이라는 관점, 또 다른 지정학적 불안이 초래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국제경제부장)
jhmoon@yna.co.kr
문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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