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이 2라운드에 접어든 가운데 국제금융시장의 안도감이 커지고 있다. 주말 사이 협상 결렬 소식에 긴장했던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합의를 간절히 원한다"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데 고무됐다. 다만, 휴전 협상의 기대감에 환호하기보다는 그동안 전쟁 때문에 잊혔던 본질적 변수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골디락스 서사'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과잉 투자 논란은 전쟁으로 인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다. 아직도 이들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생사를 건 AI 군비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리스크로 고금리 기조가 연장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부 빅테크들의 자금 사정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실질적인 수익성이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 조달 비용의 상승은 빅테크 기업들의 밸류에이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최근 금융권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도 주의 깊게 봐야 할 변수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최근 주요 은행 관계자들을 소집해 사모대출 현황을 점검했다. 규제 사각지대에서 몸집을 불려 온 사모신용 펀드들이 개인투자자들의 거센 환매 요청에 직면한 상황에서 시장은 신용경색과 금융권 전이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분기에 사모신용펀드 환매규모는 200억 달러(약 30조 원)에 달했는데, 2분기에도 환매 요구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AI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이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의 입지를 위축시킨 가운데 사모신용 펀드들의 대출이 소프트웨어 산업과 상당 부분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AI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재편할수록 기존 소프트웨어 기반 대출 자산의 부실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감지한 투자자들이 선제적으로 자금 인출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사모대출 시장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AI 인프라가 고도화될수록 사모 대출의 건전성은 악화하는 구조적 취약성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다.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연방준비제도(Fed)의 리더십의 혼란도 시장 불안을 자극할 잠재적인 변수다.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의 행보는 안갯속에 싸여 있다. 워시 지명자는 과거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강한 매파적 성향을 보였으나 그의 정책 스탠스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아 시장의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중동 전쟁 이후 서부텍사스원유(WTI)가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고물가 기조의 지속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워시 지명자가 취임 후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물가는 상승의 폭이 가팔라지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대비 3.3% 올라 연준의 물가 목표치 2.0%를 한참 벗어났다. 중앙은행 입장에선 금리인하보다 금리를 동결하거나 인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워시 지명자가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압박의 진퇴양난의 상태에 빠졌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의장 지명자에 내정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만큼 금리인하를 할 수 없다는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위험자산의 동력인 금리인하 기대가 약화되는 가운데 다음 주 예정된 워시 지명자의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는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제롬 파월 현 의장의 해임 관련 소송전이 어떻게 흘러갈지, 워시 지명자가 청문회 표결을 무사히 통과할지, 파월 의장이 퇴임 후 연준 이사로 계속 남아 워시의 금리인하에 반대의견을 개진할지도 연준의 리더십과 관련한 시장의 불확실성을 자극할 요소다.
11월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나타날 확장적 재정정책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봐야 할 변수다. 표심을 잡기 위해 재정 투입을 늘릴 경우 미국 국채 발행량 증가로 이어져 국채금리를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전쟁이 남긴 또 하나의 후유증은 자원민족주의의 부활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계기로 각국은 자원을 무기화하는 법을 배웠다. 중국과 러시아 등 핵심 광물(리튬, 희토류 등)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유사한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이른바 '자원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통화정책 당국이 금리를 올려도 제어할 수 없는 비금융적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jang73@yna.co.kr
이장원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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