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신민경 박경은 기자 = 지난해 12월 치러진 제7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는 대통령의 강력한 자본시장 정상화 의지 속 가장 소문난 잔치 중 하나였다.
하지만 후보 등록은 세 명에 그쳤다. 역대 금투협회장 선거 중 최저다.
출마를 위해 물밑에서 준비해온 전직 증권사 수장들이 당국의 제재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줄줄이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이 박정림 KB증권 전 사장과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에 최종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금융당국의 제재 판단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국민 감정을 반영해 상징적으로 중징계를 내렸다"는 비판이다. 당국은 '단죄'의 상징성을 고려했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당국이 과도한 제재와 무조건적 항소·상고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짐 쌌는데…사태 7년 만에 '무죄'
지난 10일 대법원은 '라임펀드 사태' 관련 박정림 전 KB증권 사장에게 내려진 중징계를 취소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앞선 3일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 역시 '옵티머스 사태' 관련해 중징계 처분 취소가 확정됐다. 2019년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불거진 이후 7년 만에 금융당국의 중징계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적 판단이 나온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2023년 11월 박 전 사장에 직무정지 3개월, 정 전 사장에 문책경고 처분을 내렸다. 금융사 임원 제재 수위는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 경고 △직무정지 △해임 권고 등 총 5단계다. 문책 경고 이상을 받으면 연임을 비롯해 금융회사 취업이 한시적으로 제한된다. 이 영향으로 박 전 사장은 연임이 무산됐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4연임이 유력했던 정 전 사장도 임기만 채우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들은 중징계 처분 직후 "위법하다"며 소송전에 시작했다.
당국이 두 CEO를 중징계한 주된 근거는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 마련의무 위반'이었다. 고위험 사모펀드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팔아 피해자들이 큰 피해를 본 만큼 그 책임을 최고경영자(CEO)가 져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1심부터 3심까지 일관되게 양사 CEO 측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두 증권사에는 내부통제 기준이 마련돼 있었다"며 "상대적으로 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이 없었단 이유로 규율하는 건 사후적 평가로 책임을 추궁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고위험 상품 출시를 막을 내부통제 기준이 없었다"는 금융당국의 주장과 배치된다.
수년에 걸친 소송전은 사실상 징계 효과를 가진다. 사회적 낙인 속에서 경영 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정 전 사장은 대법원 최종 판결 직후 연합인포맥스와 통화에서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오명을 벗은 데 만족한다"면서도 "고객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무겁게 느끼지만, 잘잘못을 따지지 않은 채 CEO 개인에게 모든 법적 책임을 묻는 데는 동의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현재 정 전 사장과 박정림 전 사장은 각각 메리츠증권과 KB증권에서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 당국 "경고 위해 중징계" vs 시장 "결과론적 책임 추궁"
금융당국은 내부통제 엄중 제재 선례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CEO 제재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막대한 투자자 피해가 생긴 만큼, 단순 기관 제재에 머무를 경우 시장에 주는 경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당국 한 관계자는 "행정 제재는 법원처럼 법리에만 의존해 판단하기 어렵다"며 "정책 방향과 국민 감정(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금융사 경영진에게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부과하고 있었지만, 해당 기준의 준수 의무까지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처럼 내부통제 관련 규정이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국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CEO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방식을 택했단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시장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는 시기였다"고 부연했다.
당국이 1심 패소 이후에도 항소와 상고를 이어간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패소 가능성이 있더라도 대응을 멈추면 소극행정으로 해석될 수 있어 끝까지 다툴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시장에선 금융당국이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단 비판이 나온다. 사고 원인이나 CEO의 '선관주의' 의무 이행 여부를 따지기보다, 결과적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데 집중했단 얘기다.
패소 가능성에도 항소와 상고까지 이어간 데 대해선 '보여주기식 제재'라고 지적했다. 소송이 장기전이 되면서 당사자들은 사실상 현업을 떠났다.
금융투자 업계 한 변호사는 "당국이 법보다는 여론과 명분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다"며 "엄정제재 상징성도 중요하지만 무조건적인 항소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중징계 취소소송 줄패소에…금융당국 '자중' 분위기
연이은 패소에 최근 당국에선 자중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신한투자증권의 1300억원대 내부통제 부실 사고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조기에 물러난 김상태 전 사장이 대표적 예다.
김 전 사장은 제7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 출마를 준비해오다 금감원의 '중징계' 사전통지에 발목이 잡혔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신한투자증권에는 기관경고를, 김상태 전 사장에게는 문책경고 처분을 통보했다.
정부의 모험자본 활성화 기조 속에서 발행어음업 인가를 준비하던 신한투자증권에는 '기관경고' 처분에 그쳤지만, 사고의 심각성을 감안해 CEO에겐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김 전 사장에 대한 중징계 처분을 두고 금감원 내에선 이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사 CEO들과의 1심에서 줄줄이 패소 판결을 받고 있는데 또 중징계 처분을 내리는 게 적절하냐는 문제 제기다. 결국 금감원은 제재심 과정에서 김 전 사장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로 낮췄다.
금융사 임원 징계의 경우 금융위에서 최종 결단을 내리지만, 감독 행위자인 금감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금감원이 상정한 제재 수위를 토대로 논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제재 공정성을 키우겠다고 밝힌 상태다.
올 2월 발표한 '2026 금감원 업무계획'에서 금감원은 "처벌 중심의 제재에서 벗어나 금융사 내부통제 역량 강화를 도모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제재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제재 내용과 결과를 누구나 검색, 열람할 수 있도록 제재공시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법무법인 한 변호사는 "책무구조도를 통하더라도 '선관주의' 이행 여부를 따질 때는 정성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대형 금융사고 이후 금융당국이 판단 근거와 제재 과정, 법원 판결 결과까지 종합적으로 정리한 백서를 만들어 두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사원처럼 제재 결론뿐 아니라 제재 근거와 판단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결과 중심의 규제'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mkshin@yna.co.kr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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