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인사청문회는 정책 발표의 장이 아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압박 속에서 후보자의 사고 구조, 반응 방식, 언어 습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15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청문회를 채권시장의 시작으로 들여다보면, 앞으로의 4년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첫번째 눈에 띄는 지점은 신 후보자는 압박을 받으면 수렴하지만 그런데 그것이 소신인지 전략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반복된 패턴 중 하는 처음에는 유보적으로 답하다가 위원이 거듭 몰아붙이면 상대방의 표현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오전까지 버티다가 오후 보충질의에서 같은 주제로 다시 압박받으면 결국 수렴한다.
환율 질의가 이 패턴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줬다.
정일영 의원이 오전에 "환율이 높아요, 시원하게 답변하셔야 돼"라고 압박하자 신 후보자는 "과도한 환율 상승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론으로 버텼다.
"1,300원대로 내려가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직접 질문에도 "정확한 수준 자체는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은데…"로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소신을 지킨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의원이 오후 보충질의에 다시 돌아와 "현재 환율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환율이다, 안정화에 최선을 다하시겠다고 말씀해주실 수 있잖아요"라고 하자 "네, 그렇습니다"가 나왔다. 오전까지 버텼던 표현을 오후에 같은 의원의 압박을 받은 뒤 수용한 것이다.
외화자산 처분 논의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오갔다.
이런 패턴이 채권시장에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압박할 경우, 신 후보자의 최초 발언이 최종 입장이 아닐 수 있다.
지금의 이창용 한은 총재가 2024년 9월 미국의 금리 인하로 우리도 금리 압박이 커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언론의 압박이 커지는 것이지 외환시장의 압박은 줄어든다"며 선을 긋던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은 신현송의 첫 발언과 세번째 발언 중 어느 쪽을 신뢰해야 할지 기준을 잡아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유보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짜 소신의 흔들림인지, 아니면 청문회라는 특수한 정치적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택한 방어전략인지는 지금 단계에서 구분하기 어렵다.
압박 없이 자발적으로 나오는 첫 문장이 진짜 포지션이다.
한은의 독립성 관련한 질문에 신 후보자는 독립성을 원칙으로 말했지만, 소통은 유연하게 열어뒀다.
권영세 의원이 "청와대와 한은 총재의 관계가 어때야 하나"라고 묻자 신 후보자의 답은 짧고 명확했다.
그는 "한국은행이 독립은 그 책무를 이루는 데 아주 중요한 제도 기반"이며 F4 회의에서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 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독립성은 원칙으로 선언하되, 정부와의 소통 채널은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총재는 정부의 재정정책이나 농업·교육 같은 예민한 주제에서도 소신 발언을 거침없이 내놓으며 독립성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신 후보자는 아직 실전을 겪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정부의 확장재정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 점을 고려하면 향후 더 큰 규모의 확장 재정이 나왔을 때 신 후보자가 어떤 언어를 쓸지가 채권시장에는 중요하다.
재정정책에 3T 원칙에 부합하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우호적 논평을 청문회라는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했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하다.
신 후보자는 또 청문회 내내 "파악하고 있다, 살피겠다, 고민하겠다" 등의 언어를 반복했다.
가계부채 구조 세부사항, 한국 특유의 주택대출 운용 방식 등의 국내 정책 실무의 결이 있는 영역에서 나온 답변이다.
신 후보자는 가계부채 거시 구조, 통화정책 프레임, 금융안정, 디지털 화폐, 환율 매커니즘 등에서는 전문성을 보이고 청문회에도 확신 있게 답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국내 정책 집행 경험과 한국 실물경제에 대한 세부 감각이다.
이 간극이 좁혀지는 속도가 취임 초기 채권시장의 불확실성 기간을 결정한다.
신 후보자는 압박 앞에서는 수렴하는 경향, 조건문으로 일관하는 언어, 전문 영역 밖에 대해서는 학습을 약속하는 태도 등을 보였다.
이창용 체제에서 시장이 익숙해진 것은 '총재의 발언이 시장을 선도한다'는 구조였다.
신 후보자는 자신이 확신하는 영역에서는 말이 명확하지만 불확실하다고 판단하는 영역에서는 말을 아낀다.
특히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중동 리스크, 고환율, 물가와 성장의 상충이라는 국면이 그의 기준으로 보면 '불확실한 영역'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청문회를 지켜본 한 채권시장 참가자는 신 후보자가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공감 능력은 낮은 것 같다"면서 "논리 중심 사고를 하고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잘 파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후보자가 말을 아끼는 모습이라며 향후 통화정책 결정이 나왔을 때는 말보다는 '글'이 강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단어와 문구, 행간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야 하므로 기자회견 자체보다 통화정책방향문이 중요해질 수 있다고 짚은 것이다.
이창용 총재가 명확한 표현으로 거침없이 본인의 의견을 '말'로 전달하는 것에 능했다면, 신 후보자는 현장의 '말'보다 '글'을 통해 더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부 시장팀 정선미 기자)
smjeong@yna.co.kr
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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