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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헌의 단상] 전쟁 추경

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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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2026년 봄, 한국 경제는 중동전쟁이라는 돌발변수 앞에 서 있다. 고유가와 고환율, 불안정한 글로벌 공급망은 우리 경제를 거세게 흔들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고, 달러-원 환율은 1,500원 선을 돌파하며 수입물가와 생활물가를 동시에 압박했다. 수출기업은 원자재·물류비 급등으로 채산성 악화의 위기에 몰렸다. 취약계층은 난방·교통비 부담이란 직격탄을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러한 복합 위기를 '전쟁이 불러온 경제 충격'으로 규정하며, 신속한 재정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바로 '전쟁 추경'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 등에서 "취약계층과 수출기업 지원을 위해 전쟁 추경을 신속하게 편성해달라"고 강조했고,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 등장한 '전쟁 추경'이란 단어는 이후 정부와 여당의 공식 용어가 됐다.

'26.2조' 전쟁 추경 국회 예결위 통과, 정부 인사하는 박홍근 기획처 장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위기 대응의 속도와 규모만큼은 전례 없는 기록이다. 정부는 약 26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신속히 편성했다. 대통령 지시 후 불과 보름 만에 국회 제출, 열흘 만에 의결된 과정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신속함이다. 정부안 편성까지 포함하면 소요 기간은 29일로 최근 20년 내 가장 신속하게 처리됐다. 취약계층 3천500만 명에게 유류비와 생계비 등을 지원하고, 기초수급자에게는 4월 중 현금이 지급된다. 고유가·고환율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직접적인 방패를 제공하는 셈이다.

초과세수 25조원을 활용해 국채 발행 없이 재원을 마련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가채무비율은 51.6%에서 50.6%로 낮아지고, 국채 1조원을 상환하면서 채권시장 안정에도 기여한다. 실질 GDP 성장률을 0.2%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도 기대된다.

세수 추계의 불안정성은 남아 있다. 회계연도 시작 석 달여 만에 25조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한 건 나라 경제의 자산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다만, 대규모의 초과세수는 재정당국의 예측력이 흔들렸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비칠 수 있다. 재정 신뢰성이 흔들리면 시장은 정부의 숫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정치적 충돌은 피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야당은 이번 추경을 '선거용 매표'라 비판하며, 직접 피해 계층인 화물차·택배·택시 종사자들이 배제된 점을 지적한다. 대규모 추경에 따른 물가 자극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 현금 집행은 소비를 늘려 단기적으로는 경기 방어에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고유가 상황에서 물가 불안은 더욱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질의에 답하는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럼에도 정치 이슈를 제외하면 전쟁 추경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다. 추경의 일부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고유가·고환율 충격, 특히 취약계층의 충격을 막는 게 시급하단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단 얘기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추경이 오히려 물가 대응 측면에서 시의적절한 조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물가 대응 과정에서 통화 긴축이 우려되는 상황인데, 추경 등 재정정책으로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봤다.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에 집중하되 계층 간 부담 차이는 재정정책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전쟁 추경은 정부 당국의 위기 대응 신속성과 재정 운용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선례로 남을 것이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추경의 부작용과 한계는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이번 조치가 구조개혁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도 당국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추경을 넘어, 에너지 의존도 축소·산업 경쟁력 강화·재정 예측력 제고 같은 근본적 과제가 병행돼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재정의 속도와 규모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정부의 장기적 전략과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추경은 나라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할 뿐이다. (편집국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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