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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규정대로 했다" 안통한다…상장심사 성패가를 '스토리'

2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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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박경은 기자 = "규정 예고까지 겨우 보름 남짓인데, 'A는 되고, B는 안 된다'는 구체적인 지침이 나온 게 없어요. 대기업들은 강화된 심사 대상 1호가 되기를 기피할 텐데, 어떻게 해야 그나마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호합니다"

수년간 논란이 지속되어 온 중복상장 문제에 최근 금융당국이 '원칙적 금지, 예외 허용'이라는 큰 틀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주에는 한국거래소에서 의견 수렴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반응은 뜨거웠다. 제도 설명이 끝난 후에는 세부적인 예외 인정 기준을 둘러싼 질의와 법적 정합성 문제,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현장에서는 기대와 혼란이 뒤섞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업계 전반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이어졌다. 제도 정립에 그간의 '눈치 보기'는 사라지겠다는 약간의 안도감은 있지만, 실제 적용 단계에서 어떤 기준이 적용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배경에는 이번 제도 개편의 구조적 특징이 있다.

금융당국은 금지 대상인 '중복상장'의 사례를 폭넓게 세 가지로 제시했다. 물적분할 자회사뿐 아니라, 설립·인수 자회사, 지주회사 전환 목적의 인적분할회사도 강화된 규정을 적용받는다. 경제적 동일체로 인식되는 종속회사도 심사 대상이다.

심사에서는 종속회사가 자립성이 있는 상태인지, 모회사에 영업을 의존하지는 않는지를 살피고, 인사·조직 운영이나 주요 의사결정에서 얼마나 독립적으로 움직이는지도 함께 들여다본다.

핵심은 투자자 보호다. 토론회에서는 소수주주의 다수결 원칙(MoM·Majority of Minority) 도입을 두고 찬반이 엇갈렸지만, 거래소는 '과반 동의'와 같은 정량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대신 상장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보호 노력을 인정받는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지점에서 정책의 의도가 읽힌다. 빽빽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획일화된 기준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국은 촘촘한 기준이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만, 정책 의도를 흐릴 수 있다고 봤다. 빽빽한 체크리스트가 주어진다면, 발행사는 정당성을 직접 고민하기보다 형식의 틀에 맞춘 소극적인 대응을 선호하게 된다.

토론회에서도 정책 관계자들은 이러한 의도를 직접 설명했다.

고영호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고, 주주 보호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기준을 충족하면 상장이 된다는, 체크리스트만 통과하면 주주를 보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관습이 남아있지는 않을지 우려했다"라고도 강조했다.

이번 제도 개편은 판단의 주체를 바꾸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당국이 판단할 요건을 충족했느냐가 아니라, 상장의 필요성과 절박함을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관행처럼 단순히 바뀐 절차를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회사 상장을 통해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지, 기존 투자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까지 하나의 파이낸셜스토리로 설계해야 한다.

규제와 당국을 대하는 기업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처럼 정해진 틀에 맞춰 대응하는 수동적 플레이어가 아니라, 스스로 논리를 만들고 이를 시장에 던지는 '제안자'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주관사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상장 절차를 대행하고, 실사를 통해 요건을 만들어주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주관사는 기업이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 제공자다.

한 관계자는 "밸류업 공시가 그랬듯, 유상증자와 IPO 같은 자금조달에서도 기업이 자율적으로 적극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라며 ""사례가 쌓이면서 시장 안에서 통용되는 기준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연합뉴스 자료사진]

gepark@yna.co.kr

박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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