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재헌 한종화 기자 =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물류 마비가 장기화하면서 일본과 유럽은 된서리를 맞았다. 불가피한 감산으로 글로벌 업체들이 움츠러들 때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국내 산업계는 견고한 공급망으로 방어했다.
조선 부문은 한때 에틸렌 수급 차질을 겪었지만, 민관 협력으로 위기를 넘겼다. 글로벌 경쟁력이 검증된 자동차와 조선 부문은 전쟁 이후 수요 변화에 맞춰 시장 확대 기회까지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도요타·닛산·테슬라 공급망 휘청…코로나 겪으며 체력 쌓은 韓
20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자동차 외관과 연비에 직결되는 핵심 부품인 알루미늄 휠의 조달 경로를 선제적으로 다변화하면서 수급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황산니켈은 내수용 물량 전량을 국내 생산으로 충당한다. 중국산 수입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자동차 내외장재 역시 평시 수준 재고를 보유했다. 국내 완성차 기업들의 감산 기류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출처: 연합인포맥스 AI 인포그래픽]
글로벌 주요 완성차 제조사들 사이에서는 삐걱대는 모습이 연출됐다. 일본의 도요타는 중동 수출용 차량 약 4만대를 감산하기로 했다. 희망봉을 우회하는 운송 경로 때문이다. 닛산은 전용선(PCTC)을 확보하지 못하는 물류 정체로 인한 적치 공간 부족으로 큐슈 공장에서 1천200대를 줄였다.
테슬라는 홍해 물류 마비로 조향 기어 등의 부품을 제때 받지 못했다. 독일 기가팩토리 가동을 일시 중단하는 등 공급망 병목 현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민관 협력이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배경이다. 정부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상 수입 규제 특례를 적용해 수입 소요 기간을 단축했다. 고위급 외교와 민간 네트워크를 병행해 대체 공급원 마련을 서둘렀다. 생산의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원팀으로 뭉친 결과다.
◇ 조선업계, 상생까지 동원하며 장기화 예의주시
조선업에는 선박 철판 절단과 가공 공정에 쓰이는 에틸렌 가스가 필수적이다. 나프타를 원료로 생산되는 기초 화학 소재다. 중동 전쟁 초기에 가용 물량이 머지않아 바닥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졌지만, 이제는 한시름 놓은 상황이라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자동차처럼 조선도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유기적 생태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HD현대[267250]는 중소 협력사들에 에틸렌과 도료 원료를 공급하는 결정을 내렸다. HD현대케미칼을 통해 2천톤(t)의 에틸렌 비축분을 마련하고 협력사가 요청 시 5월부터 공급할 방침이다. HD현대오일뱅크로부터는 도료의 핵심 원료인 자일렌 등을 들여와 협력사에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화오션[042660]도 특별히 에틸렌 관련 특이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연합인포맥스 AI 인포그래픽]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 우려하는 중동 사태의 영향은 제한적이다"라며 "에틸렌 가스 재고는 문제가 없고, 카타르발 액화천연가스(LNG)선 취소 가능성도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추가 방어막도 정부는 세웠다. 에틸렌과 자일렌을 포함한 7개 기초유분을 매점매석 금지 대상으로 지정하고, 사업자가 해당 물품의 확보량을 전년 대비 80%를 초과해 보관하지 못하도록 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에틸렌 보유량이 한 달 치 정도 남아 있어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모니터링 중"이라고 했다.
◇ '학습효과' 새긴 K-DNA…위기 속 기회 엿본다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수요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EV) 및 하이브리드(HEV)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강력한 승부처로 평가된다.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는 전용 플랫폼 'E-GMP' 기반 전기차와 세계 최고 수준의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동시에 보유한 '투트랙' 전략에서 강점이 있다.
조선 부문도 메탄올·암모니아 추진선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 포트폴리오와 AI(인공지능) 기반 자율운항 기술을 준비했다. 고유가 부담을 덜면서 스마트 선박 시대까지 선도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 중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자동차와 조선 전반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화에 속도를 붙였다. 수소차용 탄소섬유와 선박용 고부가 금속 소재의 국산화 성공 등이 결실이다. 조선업은 과거 수주 절벽 당시 범용 선박 시장의 출혈 경쟁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친환경 선박이라는 고난도 기술에 올인하며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복된 위기로 다져진 내성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넘는 기초 체력이 됐다"며 "친환경과 스마트 기술을 앞세운 초격차 전략이 기회를 선점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jhlee2@yna.co.kr
jhhan@yna.co.kr
이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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