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첨단 산업의 핵심 원료와 소재 공급도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산업 공정이 아직 차질 없이 가동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가 어려운 필수재의 재고 소진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반도체, 헬륨 등 재고는 확보·장기화 때 주목
2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공급망 점검회의를 통해 반도체 생산 필수 소재인 헬륨과 브롬화수소의 수급에 당장 이상은 없다고 진단했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냉각재로 쓰이는 핵심 가스로, 한국은 수입량의 64%가량을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헬륨은 천연가스 처리 과정에서 추출되는 부산물인 탓에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시설 타격이나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차질에 민감하다. 특히 영하 269도의 초저온 유지 등 특수 인프라가 필요한 물류 특성상 대체 공급망 확보가 매우 까다롭다. 질소나 아르곤으로의 대체 시도가 있으나, 반도체 미세 공정에 필요한 헬륨의 열전도 특성을 완벽히 대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앞서 한 방송에 출연해 6월 말까지 사용할 헬륨을 미국산으로 대체해뒀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도 "이미 재고를 확보한 상태인 데다 미국 등 다른 대체 조달 경로가 있어 큰 문제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미국 등 대체 수입선을 확보한 상태지만, 중동의 생산 물량이 줄어들면 가격 상승 압박 등에 직면할 수 있다.
반도체 식각 공정에 투입되는 브롬화수소 역시 공급망 관리가 필요한 품목이다. 다만, 한국은 올해 기준 일본(44%)과 미국(40%)에서 브롬화수소를 대부분 수입하고 있어 당장의 부담은 없는 상황이다. 현재 브롬화수소는 차질 없이 수입되고 있으며, 국내 비축재고도 약 3개월분 이상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브롬화수소의 원료인 브롬의 주요 생산지가 이스라엘이며, 일본 역시 이스라엘에서 이를 수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중간재인 브롬화수소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두 품목 모두 공정 내 대체 가능성이 극히 낮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추가적인 공급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배터리 산업, 에너지·원료비 상승의 '구조적 압박'
배터리 업계는 원료의 물리적 단절보다는 비용 압박에 직면해 있다. 중동 리스크로 인한 국제 유가 및 전력 비용 상승은 제조업 전반의 생산 원가를 끌어올리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알루미늄의 경우 중동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제련 거점 중 하나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 등 역내 대형 제련업체의 생산 차질이나 물류 불안이 발생할 경우 글로벌 알루미늄 가격의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알루미늄은 배터리 외장재와 양극용 집전체 등에 쓰이는 만큼 가격 상승은 배터리 생산 원가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정부는 배터리 관련 소재인 황산니켈, 알루미늄 휠 등은 현재 대체 수입선 확보와 재고 보유 등을 통해 당장 수급 차질은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황산니켈은 국내 생산과 대체 조달 여건을 감안할 때 현 단계의 공급 불안은 제한적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유가 상승에 연동된 해상 운송비 부담 확대와 글로벌 원자재 시장의 불확실성은 배터리 업계의 수익성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단순한 가격 변동을 넘어 '공정 중단'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수입 국가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평시에 추가 물량을 확보하고 위기 시 정부 지원으로 국내에 공급하는 '실물 확보형 조달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진실 한국무역협회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전략적 완충 LNG 제도(SBL)'처럼 민간사업자가 평시에 전략 물량을 확보하고, 위기 시 국내 공급으로 전환할 수 있는 조달 체계 구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고유가, 공급망 단절시에도 생산이 유지되는 구조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라며 "핵심 공정은 회수, 재사용 등 자립형 공정으로, 에너지 자립 관련 기술은 국가 안보 필수 기술로 지정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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