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딜레마라는 말을 싫어한다."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이임식을 마치고 기자실을 찾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 전 총재는 "금리를 변동시키지 않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라면서 "지금 상황이 매일 바뀌지 않나. 어느 방향으로 갈 거냐를 정하기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고 부연했다.
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해야만 올바른 정책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한 설명이다.
한은에 따르면 현재 기준금리는 중립금리의 중간 범위에 위치해 있다.
그 자리에서 굳이 배를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노이즈를 만드는 일이 된다. 정책의 침묵을 통해 시그널을 찾는 국면인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6.4.21 [공동취재] yatoya@yna.co.kr
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취임 일성으로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충격으로 물가와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운영을 통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중하게 금리 결정을 해야겠지만, 필요하다면 금리를 조정하는 유연성도 가져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동사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지금 결국 질문은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모인다.
성장은 둔화하고 물가는 잡히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 이런 시나리오 앞에서는 선제대응이라는 원칙은 방향을 잃는다.
어느 쪽 충격이 더 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방향을 제시했다가는 큰 배를 다시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동결보다 훨씬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 총재는 중동사태 초반 유가 급등을 공급 충격의 교과서적 사례로 평가한 바 있다.
이 진단은 그의 통화정책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단서다. 공급 충격에 금리로 맞서는 것은 교과서가 경고하는 최악의 조합이다.
물가는 잡힐 수 있지만 성장은 두 배로 죽는다.
물론 코로나19 이후의 경험이 망설임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공급 충격으로 판단하고 기다렸다가 수요 충격까지 겹쳐 물가가 폭등했던 기억. 하지만 지금의 상을 보면 공급 충격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유보적 스탠스가 정당화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동결이 유효한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이 전 총재는 올해 하반기 아웃풋갭(실질 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차이)이 플러스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실제 성장이 잠재성장률을 따라잡는 국면이다.
중동 사태로 이같은 전망의 유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도체 초호황으로 인한 견조한 수출과 추경을 고려하면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1.9%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은은 중동사태로 인해 올해 당초 예상치인 2% 성장률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결국 남는 변수는 중동 사태로 마무리된 이후에도 한동안 떨어지지 않을 유가와 중동 사태에도 크게 훼손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성장잠재력이다.
올해 한은이 물가 전망치를 2.2%로 제시했을 때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는 배럴당 65달러였다.
반도체가 이끄는 자산시장의 호황도 심상찮다.
아웃풋갭이 플러스로 전환되면 수요측 물가압력이 살아날 여지가 생긴다.
지금으로서는 계속해서 불확실성 국면이 이어지는 점이 가장 큰 변수여서 방향을 결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수요측 압력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지, 지금의 금리가 그 압력을 제어하기 충분한지, 혹은 뒤늦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동결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딛고 있는 기준점이 여전히 유효한지 되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동결이 안전한 선택이 돼서는 안 된다. (경제부 시장팀장)
smjeong@yna.co.kr
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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