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덕에 누리는 '외생적 호황'
분열·불행의 씨앗이어선 안돼
(평택=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4.23 [공동취재] xanadu@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세계 복권 사상 최고액인 3억1천490만달러(약 4천652억원)에 당첨된 사나이가 2002년 미국에서 탄생했다.
주인공은 건설회사 사장인 앤드루 잭 휘태커. 당첨 뒤 "경기가 나빠 해고한 25명을 복직시키겠다"고 할 정도로 따뜻했던 그에게 온 행운은 저주로 변했다. 회사는 돈을 노리고 트집 잡는 소송에 시달렸고, 집에는 자주 도둑이 들었다. 당첨금 중 일부를 헌금하겠다던 이 기독교인은 도박에 빠져 돈을 탕진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그 복권을 찢어버렸어야 했는데…."
로또 당첨자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비극은 흔하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은 값비싼 진주를 운 좋게 발견한 멕시코 잠수부의 불행을 다룬 소설 '진주'로 뜻밖의 행운을 경고하기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행운이 찾아왔다. 챗GPT 출현 이후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폭발하면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중이다. 삼성전자가 2018년 호황 때 연간 영업이익으로 58조8천867억원을 벌어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는데, 올해 이보다 다섯배 많은 300조원을 벌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반도체 슈퍼호황 덕분에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1.7%)이 '서프라이즈'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국가적 행운은 뜻밖이다. 특히 삼성전자에 뜻밖인 이유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 위기론을 다룬 심층보도가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에서 나올 정도로 회사 경쟁력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삼성전자가 누리는 이번 반도체 초호황은 'AI 아버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학교 교수의 연구와 실리콘밸리 대규모 언어모델(LLM) 등이 만들어낸 '외생적(外生的) 호황'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매주 복권을 사는 끈기가 없으면 당첨도 없다. 삼성전자 직원들의 끈기와 도전 역시 지금의 호황을 가능케 했다. 이 공로를 인정해달라는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매년 연간 영업이익의 15%(300조원 기준 45조원)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라고 요구 중이다. 노조는 지난 23일 국내 최대 반도체 생산기지 평택에서 4만명 규모 결의대회를 열었고, 다음 달 21일부터는 18일간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한민국의 '반도체 로또'가 노사갈등으로 이어진 현장이었다. 이 로또는 삼성전자 노조가 노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동료를 압박하는 노노(勞勞) 갈등도 가져왔고, 다른 업종과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박탈감도 낳았다. 500만명 삼성전자 주주의 불만도 반도체 로또의 후과(後果)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자만을 우려했다. 생성형 AI라는 신기술 출현 이후 메모리 수요가 폭증했는데, 또 다른 신기술로 수요가 감소하는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시장은 경이로운 가성비를 보여준 딥시크와 메모리 사용량을 압축하는 구글 터보퀀트에 놀란 바 있다. 창신메모리 등 중국 업체의 빠른 추격도 뿌리쳐야 한다, 글로벌 반도체 강자였다가 주도권을 빼앗긴 인텔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운 앞에서 절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 노사가 알맞은 규모의 성과급 재원에 관해 합의를 이루고, 나머지 재원을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투입해 장기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국민기업으로 불리는 삼성전자가 일자리 창출과 국가전략기술을 연마하는 데 비중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시각이다. 2017년 평택 생산라인을 증설할 때 2021년까지 새로운 일자리 44만개가 예상되는 등 삼성전자의 고용유발효과는 막대하다. 또한 반도체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의 트럼프 행정부와 통상·안보 현안을 협상할 때 쓰일 카드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과 삼성전자의 반도체 로또, 그 당첨금이 지혜롭게 쓰여야 할 때다.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 이병철 회장은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원칙을 엄수함으로써 기업이 발전한다"고 했다. 삼성전자 노조와 경영진은 이 상생의 정신을 기억하며 교섭 테이블에 다시 앉아야 한다. "나라가 만사의 기본"이라며, 넓게 보던 창업자의 "사업보국(事業報國)"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대한민국 핵심 산업을 이끌어가는 주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생산 중단으로 국가 경제와 회사의 평판을 훼손할 파업만큼은 자중해야 한다. 훗날 복권 당첨을 후회하게 만들 일들을 애써 할 이유가 없다.
ytseo@yna.co.kr
서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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