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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의 조곤조곤] 대통령의 바둑판, 그 위의 AI

2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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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바둑판 한 장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불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7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바둑판을 선물 받았다. 2016년 '알파고 대국'의 두 주인공, 하사비스 대표와 이세돌 9단이 함께 서명한 바둑판이었다. 한때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를 가르던 그 판이, 이날은 국가와 기술이 마주 앉는 자리로 옮겨왔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었다. 인간이 수천 년 쌓아온 '직관의 영역'을 기계가 넘어설 수 있는지를 시험한 사건이었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충격적이었다. 그날 이후 'AI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산업과 정책, 나아가 국가 전략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 장면을 총괄했던 하사비스 대표가 'AI 3강'을 외치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건넨 바둑판은, 그래서 단순한 기념품 그 이상이었다. 과거의 승부와 현재의 협력, 그리고 미래의 경쟁이 겹쳐진 상징물에 가까웠다.

이 장면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바둑이 이 대통령에게 낯선 언어가 아니어서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를 '아마 5단 정도'라고 소개할 만큼 바둑 애호가다. 한 수를 두기 위해 수십 수를 읽고, 일부를 버려 전체를 살리는 판단을 해야 하는 바둑의 논리는 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설명할 때 자주 소환돼 왔다.

실제 외교 현장에서도 이 대통령은 바둑을 하나의 '언어'처럼 활용해왔다. 작년에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바둑 애호가인 시진핑 주석에게 최고급 본비자 원목으로 만든 바둑판을 선물했다. 또 지난 4월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시의 자매 결연도시 가마쿠라시에서 제작된 바둑알과 바둑통을 건네기도 했다. 동아시아가 공유하는 문화 코드이자, 말보다 긴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도구로서의 바둑이었던 셈이다. 이를 두고 상대와 마주 앉아 한 수씩 두듯 관계를 풀어간다는 의미에서 '반상 외교'라는 해석도 뒤따랐다.

그러고 보면 이날 하사비스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바둑판을 선물한 장면은 이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과거에는 '전통의 바둑'이었다면, 이날은 'AI의 바둑'이었다. 인간의 손끝에서 시작된 게임이 기계의 연산을 거쳐 다시 인간의 선택으로 돌아오는, 시간의 궤적이 한 판 위에 놓인 셈이다.

AI 세상에서 하사비스 대표는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다. 그는 알파고 이후 과학 연구와 인공지능을 결합하며 'AI는 어디까지 활용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확장해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건넨 바둑판은 기술적 성취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경쟁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날 접견은 화려한 발표나 구체적인 협력 성과보다, 하나의 장면으로 더 오래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과 기계가 맞붙었던 바둑판이 이제는 국가와 기술이 협력의 수를 놓는 자리로 바뀌었다는 점에서다.

승부의 기록이었던 판은 이날부터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이제 그 위에서 놓일 수는, 경쟁이 아니라 선택과 협력의 문제일지 모른다. (경제부 정치팀 차장)

이세돌 9단이 2016년 알파고 대국 10주년을 기념해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와 함께 각각 서명한 바둑판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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