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전쟁과 안전자산] 이름값 못 하는 선진국 국채

26.04.29.
읽는시간 0

[※편집자 주 =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이 발발한 지 2개월을 넘겼습니다. 통상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글로벌 투자 자금은 포트폴리오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안전자산으로 도피하게 되는데, 이번 전쟁 속에서 '전통적' 안전자산들이 체면을 구기고 있습니다. 연합인포맥스는 채권, 일본 엔, 금 등의 안전자산이 전쟁 속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이들의 지위에는 변화가 있는지 등을 전문가 전망과 함께 진단하는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세계 채권, 특히 그 가운데서도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주요 선진국들의 국채가 중동 전쟁 속에 체면을 구기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국채 금리는 인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취약한 정부 재무 구조 등의 불신으로 최근 하방 경직성이 더욱더 강화됐다.

특히, 최근의 전쟁 양상은 정부의 재정 부담을 크게 키운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저비용 드론 기술이 등장하며 전통적인 군사적 우위가 무력화된 바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이란은 비대칭 전술, 특히 드론 배치를 통해 기반 시설과 해상 수송을 방해하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기술 혁신 속도가 빨라지며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비용이 과거보다 커졌고, 이런 현실은 국가 재정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 의회는 현재 1조5천억 달러 규모의 국방 예산안을 검토 중이고, 유럽은 다년간에 걸친 군사비 증액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시장인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은 정부가 재정 적자를 통해 군사비 지출을 늘리고 있고, 이는 금리의 지속적인 상승 압력이 될 수 있다.

◇ 미국

29일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28일 기준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약 40bp 오르며 4.35%에 거래됐다.

금리는 전쟁 직후 약 한 달간 가파르게 오르며 10년물 기준 3월 27일 한때 4.48%까지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기관들은 미국 국채가 국가 부채 확대에 따른 국채 공급 증가로 예전의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동 전쟁과 이에 따른 에너지 공급 충격은 이미 압박받는 국가 재정에 추가로 부담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IMF는 최근 재정 모니터(Fiscal Monitor) 보고서를 통해 "미국 국채 공급이 폭증하면서 과거 미국 국채가 누렸던 '안전 자산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도 미국 장기 국채가 금융 위기 때 안전자산으로 기능하는 과거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으며, 이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연구소는 워킹 페이퍼를 통해 "미국의 재정 정책은 매우 확장적이고 국내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승하고 있다"며 "이런 요인과 함께 최근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글로벌 금융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고 분석했다.

안전 자산으로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미국 국채시장이 글로벌 변동성과 함께 약세를 보이고 있고, 이는 글로벌 금융 안정성 우려를 키운다는 게 이들 기관의 설명이다.

전쟁이 길어지며 유가가 계속해서 오를 경우 미국 국채 금리의 상승 압력은 더욱더 가팔라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ING는 "현재 시장 금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기대 인플레이션의 상승"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폐쇄 기간이 길어질수록 주목해야 할 핵심 지표는 10년 만기 손익분기인플레이션율(BEI)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은 "BEI가 만약 2.5%를 돌파하면 국채시장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유럽 및 일본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은 정부 신뢰도 위기에 직면하며 채권시장으로부터 막대한 이자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는 중동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정부 부채 문제가 부상하며 더욱더 심화됐다.

29일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중동 전쟁 발생 직전인 지난 2월 말 대비 영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80bp 가까이 급등한 4.97%를 나타냈다.

이탈리아 10년물 금리는 같은 기간 60bp 가까이 높아진 3.83%, 프랑스 10년물 금리는 50bp 가까이 오른 3.69%에 각각 거래됐다.

채권시장은 이 세 나라를 묶어 'BIF'(Britain·Italy·France)라 부른다. 지난 2011년 유럽 위기의 핵심이 국가의 지불 능력이었다면, 현재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정부가 겪고 있는 문제는 신뢰도 약화로, 시장은 이들을 새로운 '재정 불량국'으로 묶어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로열 런던 자산운용의 금리 부문 헤드인 크레이그 인치스는 "투자자들은 이들 국가에 장기로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더 높은 '기간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가 경제 성장을 통해 재정 상황을 타개하거나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부채를 희석할 수 없다면, 향후 국채는 더 높은 금리에서 공급돼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역시 국채 지위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쟁 발발 이후 상승하는 것은 물론, 유가가 하락하는 와중에도 유독 매수세가 제한됐다.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장이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라 피듀셔리 리서치의 미야자키 히로시 수석 전략가는 "지난 2024년 BOJ가 금리 인상 노선으로 전환한 이후 국채 변동성이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일본 국채는 더는 안전 자산이 아니게 됐다"고 평가했다.

◇ "현금이나 재정 부담 덜 한 국채 주목"

주요 선진국 국채가 안전자산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신흥국 국채나 현금으로 자금이 몰릴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모닝스타는 "지난 몇 년간 현금이 국채보다 더 나은 포트폴리오 수단이었다"며 "현금은 경제 성장의 변화에 크게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최근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현금 수익률은 지난 2022년 초반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다"고 덧붙였다.

웰링턴 자산운용의 채권 매니저인 브리 쿠라나는 "채권시장이 궁극적으로 가지는 질문은 중동 전쟁의 주된 영향이 인플레이션 상승인지 경제 성장률 둔화인지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은 지금까지 전자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후자가 더 중요한 영향으로 드러난다면 전통적 안전자산이 아닌 재정 부담이 덜한 소규모 선진국이나 신흥시장이 채권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ywkwon@yna.co.kr

권용욱

권용욱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