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은행의 공공적 성격을 강조하며, 금융권에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역할을 요구했다.
최근 신용평가 제도 개선과 함께 중금리 시장에서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참여 필요성을 지적한 그의 요구를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단정짓는 시각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실장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은행은 완전한 민간 기업이 아니다"며 "국가의 면허 위에서, 예금자보호라는 공적 안전망을 등에 업고, 위기 때면 구제금융의 보호를 받는 준공공 기관"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 특권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 개입이 아니라 계약의 이행"이라며 "이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 왜 민간 영역에 대한 부당한 개입인가"라고 반문했다.
앞서 김 실장은 세 차례에 걸쳐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쉬운 이자장사를 해온 은행권의 대출 행태를 지적했다.
이는 '한국 금융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라며 재차 물어온 이재명 대통령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 하는 사고였다.
하지만 이를두고 일각에선 시장 경제를 무시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김 실장은 "정부가 은행의 팔을 비틀겠다거나, 외국인 지분을 강제로 낮추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간 금융에 국가가 개입하자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며 "다만 우리나라 은행이 왜 이런 선택을 반복하는지, 그 뿌리를 솔직하게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구조를 이해해야 설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김 실장은 신용평가에 기반한 대출 공급이 곧 시장의 원칙이라는 방어 논리에 대해 "금융이 오랫동안 특정 구간을 외면해 왔다면, 모델은 그 공백을 위험으로 인식하고 다시 배제를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배제가 배제를 강화하는 자기강화적 루프"라며 "내가 문제 삼는 것은 모델 자체가 아니라, 그 모델을 그렇게 선택하게 만드는 더 깊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구조의 뿌리를 IMF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 체제에서 찾았다.
시스템 붕괴를 막고자 불가피하게 유입된 외국 자본이 금융 시장의 안정과 신뢰회복에 기여했지만, 그 탓에 은행이 안정적인 선택만 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김 실장은 "외국인 지분이 유독 높은 것을 두고 대한민국 은행의 경쟁력이 뛰어나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냉정하게 보면 오히려 반대"라며 "한국 은행이 외국 자본에 매력적인 이유는 면허와 규제라는 국가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보호되는 구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대마진 중심의 사업 모델, 비교적 낮은 변동성, 안정적인 배당. 이 조합이 우리나라 은행을 성장 산업이 아니라 안정적인 배당 자산으로 만든다"며 "외국인 지분이 월등하게 높은 것은 경쟁력의 결과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수익 구조에 대한 선호의 결과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글로벌 투자자에게 리스크 관리란 부실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변동성을 줄이는 것"이라며 "고신용 구간은 변동성이 낮고 관리가 쉬우니 자본이 집중되고, 중간 신용 구간은 기회는 있지만 변동성이 크고 설명이 어려우니 점점 기피된다. 이것이 의도적인 배제라기보다 구조가 만들어낸 합리적 선택의 축적이지만 결과는 냉혹하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같은 신용평가 모델을 써도 독일 슈파르카세나 일본 지방은행은 다른 결과를 낸다"며 "그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자본의 성격과 운동장의 기울기에서 온다"고 풀이했다.
그는 여기에 건전성 규제를 더했다.
김 실장은 "건전성 규제는 한국 금융을 지켜온 핵심 장치였고, 그 공로는 분명히 인정받아야 하지만 모든 규제는 동시에 유인을 만든다"며 "리스크를 낮출수록 자본 효율성이 개선되고, 이 기준은 은행의 의사결정에 그대로 반영된다. 은행은 점점 더 안전한 구간으로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중간 구간에 대한 금융 공급은 구조적으로 축소된다"고 봤다.
이어 "제도 금융이 다루지 않는 구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 높은 비용의 시장으로 이동하거나, 금융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난다"며 "신용 격차는 고용, 소득, 자산 격차와 맞물리며 증폭되고 그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고 예상했다.
그의 은행에 대한 정책적 요구가 민간 영역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 실장은 "외국인 지분율을 강제로 낮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유구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구조가 만들어내는 의사결정의 방향"이라며 "장기적 관점을 가진 자본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 중간 신용 구간을 정교하게 평가할 역량,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여지. 이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지금의 단층은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체제가 남긴 시스템적 안정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산출된 결과값을 이제는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김 실장은 "(그동안) 우리 경제의 잠재력을 직접 심사하고 키워낼 금융의 일부를 외부 자본의 논리에 맡겨왔다"며 "지금의 구조 위에 다시 우리 방식의 질서를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용금융은 금리를 낮추는 문제가 아니다. 위험이 더 정확하게 가격으로 반영되도록, 금융이 더 많은 사람을 제도 안으로 품도록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라며 "구조는 사람이 만들기에 다시 설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김용범 정책실장이 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날 오전에 열린 중동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3.9 superdoo82@yna.co.kr
jsjeong@yna.co.kr
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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