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 도입…예외적 보유·처분 위해선 매년 주총 승인 거쳐야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와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개정 상법이 시행된 가운데, 시행령 공백과 기존 회계·법률 관행과의 충돌로 기업 실무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정 목적 취득 자사주의 소각 방식, 다년간 이어지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에 대한 매년 주총 승인 의무, 전자주총 통신 장애 시 결의 취소 리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실무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정립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학교 금융법센터는 7일 '개정 상법의 쟁점: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전자주주총회'를 주제로 현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법조계와 상장회사협의회 등 실무진이 참석해 개정법 적용 과정에서 예상되는 쟁점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배당가능이익 부족해도 자사주 소각 가능해야"
첫 발제자로 나선 법무법인 광장의 구대훈 변호사는 '자기주식 소각 관련 주요 쟁점과 실무 정립 방향'을 통해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따른 기존 규범 간의 충돌을 지적했다.
배당가능이익 외에 합병이나 단주 처리 등 '특정 목적'으로 취득한 자기주식의 소각 방식이 쟁점이다. 과거 실무와 유권해석은 배당가능이익으로 취득한 자사주만 이사회 결의로 소각할 수 있고, 특정 목적 취득분은 채권자 보호 절차를 수반하는 '감자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왔다.
그러나 구 변호사는 "개정 상법은 취득 사유에 관계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소각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며 "감자 절차를 거치지 않으므로 자본금 감소 효력은 발생하지 않고 발행주식 수만 줄어드는 불일치가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기존 회계기준은 특정 목적 취득 자사주를 소각할 때 자본금을 줄이고 감자차손익(자본금 감소 시 인식하는 손익)을 인식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 변호사는 "배당가능이익이나 이익잉여금이 부족한 결손 법인도 법률상 이사회 결의만으로 자사주 소각이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적어도 법적으로 감자 효력이 없는데도 회계상 감자차손으로 처리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회계기준이 개정법의 법률적 유효성을 제약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천경훈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이 같은 견해에 힘을 실었다. 천 교수는 "2011년 법무부 상법 해설에도 배당가능이익으로 취득한 자기주식은 소각 시점에 이익이 없게 되었더라도 소각할 수 있다고 이미 명시되어 있다"며 "부족분은 결손금으로 처리하거나 자본조정 마이너스 항목으로 남겨두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법적인 관계가 우선적으로 정리되면 회계 처리는 그에 맞게 사후 정비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보유·처분 계획' 매년 갱신…중장기 주식보상 충돌 우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예외적으로 보유하거나 처분하는 과정에서도 고려해야 할 변수가 적지 않다. 개정 상법은 임직원 보상이나 경영상 목적 등으로 자사주를 처분하려 할 때 매년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했다.
법무법인 세종의 이숙미 변호사는 이 같은 '매년 재승인 의무'가 기업들의 중장기 경영 판단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우수 인재를 영입하며 3~5년의 가득기간(Vesting Period)을 조건으로 RSU 형태의 자사주 지급 계약을 맺었는데, 2년 차 정기 주총에서 해당 보유·처분 계획안이 부결된다면 회사는 노동법 및 계약상 책임을 져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구 변호사는 "차액의 현금 교부를 하는 옵션을 넣어주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상 목적'에 의한 제3자 처분 요건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개정법에 따라 경영상 목적으로 자사주를 처분하려면 정관에 근거 규정이 있어야 한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올해 정기 주총에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400여 곳이 관련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한 바 있다.
이 변호사는 "향후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제3자 처분이 '경영상 목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가 실무상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며 "회사는 특별위원회 설치나 외부 전문가 의견 청취 등 신주 발행에 준하는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해야 법적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자주총 통신 장애시 결의 취소 위험…면책 조항 부재 우려
하반기 시행을 앞둔 전자주주총회에 대해서는 인프라 한계와 책임 소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자산 2조 원 이상 대규모 상장사는 현장병행형 전자주총 개최가 의무화되지만, 정작 시스템 구축과 운영 가이드라인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트래픽 과부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 신청 절차'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통신 서버 확보와 비용 부담을 고려할 때, 전자총회 참여 주주 수를 사전에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문자나 음성을 통한 주주의 질의 및 발언 횟수도 효율적 운영을 위해 사전에 고지된 기준에 따라 제한할 수 있는 시행령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전자통신 장애로 인한 결의 취소 리스크는 기업들의 주요 우려 사항 중 하나다. 2023년 8월 법무부 입법예고안에는 통신 장애 등 기술적 사유로 결의 방법에 흠이 생기더라도 회사의 고의·중과실이 없으면 결의 취소의 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면책성 조항이 담겼으나, 2025년 최종 개정법에서는 해당 조항이 제외됐다.
김 본부장은 "통신 장애 발생 시 주총 결의 전체가 취소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법적 리스크가 존재한다"며 "불가피한 기술적 사유로 의사 진행에 현저한 지장이 생겼을 때, 주주총회 결의뿐만 아니라 의장이 직권으로 회의를 연기하거나 속행할 수 있는 권한을 시행령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연합인포맥스 촬영]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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