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지표는 좋은데 체감은 나쁘다'는 최근 경기 인식을 두고, 정부는 이를 경기 둔화의 신호라기보다 산업 변화와 정책 반영 간 '시간차'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업 이익과 수출이 빠르게 개선되는 반면, 이를 거시 지표와 정책이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면서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이다.
11일 청와대에 따르면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난 7일 경제·금융시장 전문가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최근 거시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을 청취했다. (연합인포맥스가 지난 7일 단독 송고한 '김용범, 오늘 경제전문가 간담회…'깜짝 지표 vs 체감 괴리' 점검' 제목의 기사 참고)
이날 회의에서는 반도체 업황 회복과 수출 호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등 최근 주요 지표 전반에 대한 평가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최근 발표된 1분기 GDP 성장률이 1.7%로 시장 전망치를 두배 가량 웃돈 것의 함의를 분석하며, 지표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내수 회복과 자영업·서비스업 등 같은 경제를 두고 지표와 체감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 높아지는 정책 난도에 대한 현실도 논의됐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번 '깜짝 성장'을 단순한 경기 반등으로 해석하기보다, 반도체 중심 산업 구조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로 보는 시각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 이후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업 이익과 수출이 비연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김용범 실장이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코스피 7,500, 그리고 1만의 문턱 앞에서' 제목의 글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실장은 GDP 성장률과 무역수지, 수출 지표를 차례대로 언급하며 "어느 하나도 평범한 경기 순환에서 나오는 숫자가 아니다"며 "코스피 랠리를 반도체 하나로만 설명하는 건 과도한 단순화다. 반도체는 이 모든 흐름의 트리거였지 전부는 아니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재정과 거시 전망은 기본적으로 GDP 성장률 전망을 기초로 움직이는데 이번 반도체 호황은 기존 GDP 체계가 포착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며 "문제는 GDP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반도체처럼 품질 개선 속도가 가격 변화를 압도하는 산업에서는 기존 통계 체계가 현실 변화를 너무 느리게 반영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기존 지표 통계 체계에 온전히 반영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는 "GDP는 가격과 물량을 기준으로 산출되지만, 반도체처럼 성능과 품질 개선 속도가 빠른 산업에서는 이 두 요소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며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첨단 제품은 가격 상승이 단순한 인플레이션인지, 실질 생산 증가인지 판단하기가 녹록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기업 이익은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실질 GDP는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나타나는 괴리가 발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시장은 수출과 이익을 중심으로 먼저 반응하지만, 정책은 GDP와 확정 통계를 기반으로 판단하면서 '시간차'가 나타난다는 얘기다.
글로벌 밸류체인 구조 역시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는 설계와 장비, 생산, 소비가 국가별로 분산된 산업으로, 국내 기업의 이익 증가가 곧바로 국내 GDP에 반영되기 어렵다. 산업 전반의 변화 속도에 비해 국내 통계 반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설계는 미국, 장비는 일본, 생산은 한국, 고객은 글로벌 빅테크라고 구분 짓는다면, GDP 자체는 국내에서 발생한 부가가치에 한정돼 있다"며 "현실은 한국 기업이 증가하면 글로벌 AI 투자 사이클에 미치는 영향도 늘어나는 데 GDP가 국내 기여분만 일부 반영하다 보니 이익의 증가 속도를 GDP가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라고 봤다.
전문가들은 AI 반도체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증권사 반도차 담당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인프라나 AI 모델 학습, 플랫폼 간 결합 등은 GDP가 반영하지 못하는 영역"이라며 "예를들어 HBM이 AI 효율을 3배 끌어올렸다고 치자, 클라우드 기업 생산성이 급증했다고 하면 이 가치 상당 부분은 한국 GDP가 아니라 글로벌로 반영되기에 반도체 산업의 효과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대비 GDP 반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공유된 만큼, 향후 정책 운용에서는 '속도'를 높이기 위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금까지 재정과 거시 정책은 확정된 GDP와 전통적 지표를 중심으로 설계돼 왔지만, 앞으로는 수출과 기업 이익, 고빈도 지표 등 시장 신호를 보다 빠르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보완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정책 당국이 '확정 통계 이후 대응'에서 '선제적 추정 기반 대응'으로 일부 축을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반도체 중심 성장의 편중을 고려해 내수 보완과 취약계층 지원을 병행하는 한편, 수출·첨단산업 중심 성장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금융·세제 지원이 동시에 검토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앞선 관계자는 "이조차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며 "시장이 변화를 우선 받아들인 만큼 그 격차를 얼마나 빨리 줄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jsjeong@yna.co.kr
정지서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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