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정원의 Why] 기로에 선 '한국판 나스닥'

26.05.12.
읽는시간 0

코스닥 하락 (PG)

[김토일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4일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딥엑스 등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액면 그대로 본다면 유망 기업과의 소통 행사로 보였다.

하지만 이 장면을 조금 비틀어 보면 한국 자본시장의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과연 코스닥은 무엇을 위한 시장인가?".

한때 코스닥은 '한국의 나스닥'으로 불렸다. 기술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담는 시장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코스닥은 점점 '중소형주 시장', 더 나아가 변동성 높은 투기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그럭저럭 명백은 이어왔지만, 그 과정에서 서사는 희미해졌다.

이번 회동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도 과거의 서사를 다시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순한 IT가 아니라, AI 반도체라는 가장 '핵심기술 영역'에서다.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딥엑스는 공통점이 있다. 단순 유망 스타트업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존재감을 갖기 시작한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이들을 거래소 수장이 직접 찾았다는 것은 코스닥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해외와 견주면 코스닥의 현실은 더 처참하다. 미국의 나스닥은 단순히 기술기업이 많은 시장이 아니다. '성장 스토리를 상장시키는 시스템'이다. 적자 기업도, 미래가치만으로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시장 구조가 있다.

일본도 비슷한 고민을 거쳤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2년 시장 재편을 통해 프라임·스탠다드·그로스 시장으로 나눴다. 이 중 '그로스'는 성장 기업을 위한 별도 트랙이다. 과거 '마더스(Mothers)' 시장을 계승한 구조다. 일본은 기술기업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 그 기업을 키워낼 시장 구조가 부족했다는 자기 반성에서 출발했다.

한국은 그 중간쯤에 서 있다. '8천피'를 눈앞에 둔 코스피는 대기업 중심의 안정성 있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코스닥은 기술시장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그 정체성이 모호하다. 기술기업이 상장되는 시장이 아니라 그저 상장 가능한 기업이 모이는 시장으로 변질됐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최근의 글로벌 자본시장은 다시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플랫폼. 이 네 축이 시장의 중심이다. 한국도 산업적으로는 그 한 가운데 있다. 메모리 반도체와 장비, 소재, 그리고 이제는 AI 칩 스타트업까지 포함됐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아직 그 변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간담회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또 있다. 도입을 논의 중인 '코스닥 승강제'다.

이는 코스닥 시장 내에서도 기업을 구분하고, 일정 기준에 따라 상·하위 트랙을 오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간단히 보면 지금의 '단일 시장'에서 벗어나 내부적으로 리그를 만들겠다는 시도인 셈이다.

지금까지 코스닥은 상장 이후 기업 간 구분이 모호했다. 성장기업과 정체기업, 기술기업과 일반기업이 한 시장 안에서 뒤섞였다. 이러한 구조에선 투자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승강제가 의도에 맞게 작동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기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단순 규모나 단기 실적 등 쉬운 기준을 적용한다면, 코스닥은 현재의 대우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어려운 길이지만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 기준을 구현한다면, 비로소 '기술시장'으로의 복원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은 다시 성장의 서사를 담는 시장이 될 수 있을까. (증권부 정원 차장)

jwon@yna.co.kr

정원

정원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