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언어학에는 상보적 분포(complementary distribution)라는 개념이 있다. 둘 이상의 음소 혹은 형태소가 배타적인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국어의 주격조사에는 '-이'와 '-가' 두 종류가 있지만 둘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같은 기능이지만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난 9일부로 다주택자에게 양도소득세 중과세 유예 기한이 종료됐다.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는 짧은 기간 우리 주택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급격한 매물 증가와 이에 반비례한 임대차 물건 실종이었다.
아래는 현 정부가 종종 언급하는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서 집계한 서울 아파트 매물 추이다. 올해 들어 5월 11일까지의 모습을 가져왔다.
[출처: 아실]
연초 5만건 초중반이던 서울 아파트 매물은 1월 23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연장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략 3월 말쯤 8만 건으로 정점을 찍고 이후 점차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아파트 전세 물건 추이를 살펴보자.
[출처: 아실]
올해 초 2만 건이 넘던 서울 아파트 전세물건은 1월말 이후 급감하는 추세를 보이며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1개월 전에는 1만5천건 수준으로 내려왔다. 짧은 시간에 8천건가량 매물이 사라졌다. 이사철 성수기가 초중고 개학 시기 이전으로 당겨졌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감소폭이 가팔랐다. 이런 추세는 월세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출처: 아실]
이 그림 세 장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서울 아파트 매매 물건이 3월까지 빠르게 증가했다는 점, 그리고 같은 기간 전세와 월세가 빠르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서울에서 아파트를 매매하려면 토지거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신규 매수자는 매입한 아파트에 반드시 실거주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차 계약 종료 시점을 맞이한 임대인이 다주택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분명하다. 신규 임대계약보다는 자신이 보유한 아파트를 매도함으로써 세제 혜택을 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이것이 그림 1, 2, 3에서 추론해 낼 수 있는 내용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작은 근거는 전세 물건과 월세 물건의 5월 동향이다. 4월까지 급격한 감소를 보이던 전월세 등 임대차 물건은 5월 들어 꼬리를 살포시 들고 있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달 9일까지 매매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물건들이 다시 임대차 시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가 아닌지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아쉬운 것은 국토교통부 등 주택정책 당국의 대응이다. 임대차 시장에 있던 주택이 매매시장으로 돌아서면 그만큼 임대차 시장에 충격이 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한 채밖에 없는 집을 임대도 놓고 매매도 하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매 시장에서 매물이 1건 늘어나면 임대차 시장에서 매물이 1건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상보적 분포에 있다.
그러면 임대차 시장 불안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만약 이 시점에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집중될 수 있었다면 임대차 시장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파트로 집중된 임대차 수요를 비아파트 주택으로 돌리기만 했더라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 정부의 다주택자 매매 유도정책은 임대차 시장 불안을 가져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서울 아파트 임차료 상승 시기를 살펴보면 지난 정부 비아파트 주택의 전세사기 급증과 맞물려 있다. 즉 다양한 주택시장에 분포하던 임대차 수요가 전세사기를 피해 아파트 시장으로 몰려오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보증금, 월세 등 임차료가 급등했다. 다주택자 매물 유도에 앞서 비아파트 주택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이유다. 지난 2월 김진애 국가건축위원장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밝힌 도심형 블록주택도 하루빨리 공개될 필요가 있다.
5월 9일이 지났다. 매수자를 찾지 못한 물건들은 다시 임대차 시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다고 해도 한 번 오른 가격이 다시 내려오기는 쉽지 않다. 여야가 격돌하는 지방선거는 임대차 시장 불안을 더욱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다주택자에 이어 비거주 1주택자의 매물을 시장에 나오게 하겠다고 한다. 국민 주거 안정이 아니라 주택매매 활성화가 현 정부의 주택정책 목표가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산업부장)
spnam@yna.co.kr
남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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