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상민 기자 = 정부와 금융권이 손잡고 야심 차게 출범시킨 국민성장펀드의 돈줄이 본격적으로 풀린 가운데 벌써부터 한정된 투자 대상에 대한 공급 부족과 밸류에이션 과열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양질의 프로젝트를 선별해 전략산업에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첨단산업 관련 일부 비상장 기업들의 몸값만 빠르게 올라가는 등 딜 부족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위험가중자산(RWA)에 인센티브가 적용되는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하는 차원에서 관련 딜을 산업은행에 보고하고 있다.
현재 6개 은행은 2명씩 국민성장펀드 운용 조직에 파견을 보냈다. 파견 직원들은 각 은행이 발굴한 프로젝트에 대해 산업은행과 소통하고 있다.
다만, 국민성장펀드에 해당하는 투자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측면에서 딜 선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인공지능(AI)·바이오 등 국민성장펀드 지원 대상에 해당하면서도 규모 요건까지 충족하는 딜이 산업 현장에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반 제조사를 대상으로 국민성장펀드에 들어갈 만한 딜은 이제 사실 많지 않다"면서 "금액이 커야 하다 보니 인프라성 딜 위주로 검토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조 단위 인프라 딜일수록 이해관계자가 많고 구조화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여러 은행이 동시에 참여하는 신디케이트론 방식이 되면서, 대출 트렌치를 여러 개 나눠야 하는 상황이 더러 이어지며 협의 과정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각 은행은 실적 압박을 느끼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기업들의 협상력이 지나치게 올라가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국민성장펀드와 관련해 한정된 우량 딜에 여러 기관이 동시에 달려들다 보니, 기업 측이 밸류에이션을 높게 부르거나 금리·지분 조건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 투자은행(IB) 부서 관계자는 "초기에 어렵게 의사결정을 해서 지원하려 했는데, 기업이 '다른 데서 더 좋게 해준다'고 하면 결과적으로 먼저 발굴한 금융기관이 뒤로 밀려나는 상황도 더러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DB하이텍에 대한 지원 검토 사례도 언급된다. 오너리스크 문제로 1차 메가 프로젝트의 투자 진행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도 DB하이텍 측은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반도체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당국 입장에서도 확실한 투자 결정을 못 하는 상황이 일어났다는 전언이다.
이러한 가운데 기계적인 지방 균형 발전 요건도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체 투자의 40% 이상을 지방에 집행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현장에서 실제론 수도권 집중 딜이 많은 현실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새만금 관련 사업이나 해남 태양광 발전 사례처럼 지방에 위치한 대형 인프라 딜이 이 조건을 메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속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업계에서는 '실적 채우기'가 국민성장펀드의 목적이 되면 딜의 수익성 측면에서 점차 '거품'이 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은행권 한 임원은 "국민성장펀드도 결국 각 은행이 어느 정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딜은 국민성장펀드에 점검받아 보고 있다"며 "기업이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부르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어, 양보다는 질에 집중할 수 있는 펀드 구조가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이런 현장의 우려를 의식하며 유망기업을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전일 금융위원회는 손영채 국민성장펀드추진단장 주재로 성장기업발굴협의체의 공식 운영을 위한 설명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성장기업발굴협의체는 특정 분야 및 기업에 대한 투자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을 목적으로 출범했다. 유망기업은 생태계 파급효과와 성장잠재력 등을 바탕으로 산업 특성에 맞는 기준에 따라 심사할 계획이다.
손 단장은 "협의체는 국민성장펀드 투자 대상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안테나"라며 "첨단전략산업 육성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책 펀드, 국가 연구개발(R&D) 단위과제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유망기업 스케일업에 필요한 투자건 중심으로 협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구일모 제작] 일러스트
smhan@yna.co.kr
한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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