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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이모저모] "도저히 숫자가 안 나옵니다"…불장이 애널에 내준 숙제

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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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도저히 숫자가 안 나옵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미래에셋증권의 목표 주가(TP)를 산출하며 털어놓은 고충이다. 전통적으로 증권업종은 시클리컬(경기민감) 성격을 띠어 주가순자산비율(PBR)로 기업 가치를 평가해왔다.

하지만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기존 잣대로는 현재의 주가 수준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PBR 목표치를 무작정 높여 잡을 수도 없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의 지속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이론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식대로 적정주가를 도출하면 현재 주가보다 낮은 숫자가 나오는데, 매도 리포트를 쓰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게 그의 고민이다.

실제로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1분기 1조 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달성했지만, 커버리지 증권사 15곳 중 11곳이 중립 의견을 냈다.

목표주가를 11만 원으로 가장 높게 제시한 NH투자증권은 골드만삭스가 '전성기'에 받았던 평균 PBR 3.89배를 미래에셋증권에 대입했다. 현재 골드만삭스의 PBR은 미래에셋증권과 유사한 2.5배 수준이다.

키움증권은 평가 기준 자체를 바꿨다. 증권주에 잘 쓰지 않던 주가수익비율(PER) 방식을 적용해 20배 수준의 멀티플을 부여했다. 미국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가 토큰화 사업 확장으로 PER 30~90배에서 거래되는 점을 참고해 국내 시장 규모를 감안, 보수적으로 수치를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잣대 갈아타기'

'불장'에 높아진 주가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밸류에이션 기준을 동원하는 사례는 다른 업종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1월 SK증권 한동희 연구원이 제시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PER 전환 논리'다.

메모리 반도체 역시 시클리컬 산업으로 분류돼 그간 주로 PBR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슈퍼 사이클 도래 이후 장기 공급계약 비중이 늘며 이익 변동성이 줄어든 만큼, PER로 기업 가치를 매기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당초에는 소수 의견에 머물렀다. 메모리 산업 특유의 사이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일부 증권사는 "PER은 실적에 따라 급등락할 수 있어 밴드 하단 지지선 역할을 하는 PBR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며 기존 방식을 고수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최근에는 마이크론의 2026년 예상 PER이 10배가 넘는데 반해 SK하이닉스는 6~7배에 불과하다며 밸류에이션 매력을 부각하는 분석이 흔해졌다. 종합반도체기업(IDM)을 PER로 평가하는 방식이 시장에 꽤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거품 붕괴의 기억…2021년 'PDR'

그러나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늘 정당한 결과를 낳지는 않았다.

지난 2021년 유동성 장세에서는 전통적인 PER이나 PBR로 설명하기 힘든 종목들을 'PDR(Price to Dream Ratio·주가꿈비율)'이라는 신조어로 평가하기도 했다.

10년 뒤 예상되는 전체 시장 규모(TAM)에 특정 기업의 예상 점유율을 곱해 미래 가치를 현재로 끌어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PDR로 한껏 부풀려진 주가는 이후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거품이 꺼졌다. 당시 한국투자증권이 상표 등록까지 추진했던 PDR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비슷한 논리 구조를 가진 밸류에이션 방식은 지금도 시장 일각에서 활용되고 있다.

KB증권은 최근 현대차의 목표주가를 기존 31만원에서 80만원으로 158% 대폭 상향 조정했다. 본업인 자동차 가치(69조원)에 보스턴다이내믹스 간접 지분 가치 35조원, 휴머노이드 활용 자율주행 파운드리 사업 가치 60조원을 더한 결과다.

산식의 출발점은 향후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중국의 노동가능인구가 1억1천만명 감소한다는 거시 전망이다. 그 공백을 휴머노이드가 메운다는 가정이 더해지면 2035년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연 960만대 규모로 추산된다.

여기에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그중 15.6%인 150만대를 생산하고, 매출 404조원, 영업이익 62조원을 거둔다는 가정이 차례로 쌓인다.

마지막으로 가중평균자본비용(WACC) 15.5%와 영구성장률 3%를 적용한 현금흐름할인모형(DCF)을 돌리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 128조원이 도출된다. 그 중 현대차의 지분 가치만을 반영했다. 가정에 가정을 얹어 10년 뒤 미래의 숫자를 현재로 끌어오는 구조다.

각 가정은 서로 곱해지는 구조라 어느 하나가 어긋나면 결과값은 산술적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달라진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시장 점유율이 줄거나, 영업이익률 전망이 빗나가거나, 할인율이 소폭 조정되더라도 128조원이라는 기업가치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연초 삼천당제약 주가 급등기에 2032년 별도 기준 영업이익 7천683억 원을 달성할 것으로 추정하고 타깃 PER 40배를 적용, 현재 가치로 할인해 기업 가치를 14조7천억 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2032년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미국 판매 파트너와의 이익 공유 계약에서 창출될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됐다. 그러나 현재 삼천당제약 주가는 고점 대비 절반 이상 떨어졌다. 6년 뒤의 계약 성사를 전제로 쌓아 올린 기업 가치가 현재의 주가를 지탱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저울이냐, 인기투표냐…ROE 지속 여부가 중요

시장의 잣대 전환을 두고 구조적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인지, 과열 국면을 알리는 징후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잣대 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으로는 ROE의 구조적 상승 여부가 꼽힌다. 타깃 PBR은 ROE에서 자본비용을 뺀 초과수익이 얼마나 지속되느냐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ROE가 구조적으로 올라가면 새 잣대는 정당화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주가만 앞서간 셈이 된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포스코가 시클리컬 철강주에서 벗어나 PER 기반으로 재평가받을 당시, 수년간의 실적 성장이 뒷받침됐다. 지금의 SK하이닉스도 영업이익률 70%의 강력한 이익 체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평가 기준을 정당화시키는 중이다.

반면, 수년 뒤의 불확실한 가정을 차곡차곡 쌓아 현재 주가를 설명하는 사례도 혼재돼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23년 업계 최초로 에코프로 매도 리포트를 냈던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의 뼈있는 지적을 되새겨볼 만하다. 당시 그는 "본질 가치를 초과한 버블의 영역에서 변동성 전투 참전은 결국 벌금으로 돌아올 뿐"이라며 "주가는 단기적으로 인기투표와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울과 같다"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격언을 인용한 바 있다.

지금 새롭게 동원되고 있는 밸류에이션 잣대들이 인기투표를 설명한 결과인지, 아니면 기업의 진정한 무게를 달아내는 저울인지는 결국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증권부 이규선 기자)

여의도증권가

[연합뉴스 자료사진]

kslee2@yna.co.kr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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