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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의 조곤조곤] 미·중이 찾은 제3국, 달라진 광장 한국

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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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고위급이 정상회담 하루 전 마지막 실무협상 장소로 한국을 택했다. 지난 13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인천국제공항 의전실에서 마주 앉았다. 경쟁과 견제를 이어가는 양국의 협상 대표가 제3국에서 막판 조율에 나섰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장면이다. 강대국은 충돌할수록 제3의 공간을 찾는다. 서로의 수도도, 상대의 영향권도 아닌 곳. 정치적 부담을 덜고 협상에 집중할 수 있는 중간지대다.

오랫동안 싱가포르가 그 역할을 맡아왔다.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회동,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회담 모두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균형 외교와 철저한 보안, 안정된 의전 역량이 만들어낸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공간이 한국이었다.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해공항 의전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6년 4개월 만에 마주했다. 김해공항이 인천공항으로, 정상 간 회동이 고위급 협상으로 바뀌었을 뿐, 미중이 찾은 제3국은 이번에도 한국이었다.

양국 협상 대표는 회동에 앞서 각각 한 시간 간격으로 청와대를 찾아 이재명 대통령을 만났다. 허리펑 부총리는 "미중 정상회담 직전 협상을 한국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 뜻깊다"고 했고, 이 대통령은 "양국의 안정적 관계가 세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평범한 외교적 수사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면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왜 한국일까.

동선상의 편의로 보기엔 반복된 선택이다. 여기에는 단순한 동맹국이나 주변국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한국의 위치가 작용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AI), 공급망과 에너지까지, 미중 경쟁의 핵심 축은 모두 한국을 지난다. 미국은 기술 동맹을 강화하려 하고, 중국은 공급망 이탈을 막으려 한다. 양측 모두 한국을 압박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을 거치지 않고서는 전략을 완성하기 어렵다.

결국 김해공항에 이어 인천공항에서 이뤄진 미·중 회동은 단순한 편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느 한쪽의 공간이 아니라, 양측이 모두 감내할 수 있는 접점으로서의 공간이라는 점에서다.

지난달 인도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은 동포 간담회에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언급했다. 6·25 전쟁 포로였던 주인공 이명준은 송환 과정에서 '중립국'을 택했고, 그를 태운 배는 인도를 향했다.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제3국으로 향했던 사람들, 분단이 남긴 경계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의 '제3국'은 선택이 아니라 밀려난 결과였다. 어느 체제도 온전히 품어주지 못한 이들이 떠밀리듯 향했던 곳. 그래서 그곳은 자유의 공간이 아니라, 소속을 잃은 인간의 불안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의 제3국은 국제정치에서 다른 공간이다. 싱가포르가 그랬듯, 강대국이 충돌을 관리하고 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곳이다. 체면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의도된 중간지대다.

이번 인천공항 의전실에서의 회동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단순한 중립을 넘어, 한국이 가진 산업적·전략적 무게가 반영된 결과다.

물론 소설 광장의 결말이 말해주듯 제3국이란 공간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긴장이 높아질수록 가장 먼저 흔들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변화는 분명하다. 한때 사람들은 제3국으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강대국들이 제3국을 먼저 찾아온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복판에, 지금 한국이 서 있다.(정치팀 차장)

방한한 베선트 미 재무장관

(영종도=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이날 베선트 장관은 한국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예방하고 한미 간 각종 현안과 국제 정세를 논의한 뒤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만나 미·중 정상회담 의제를 사전 조율할 예정이다. 2026.5.13 [공동취재] saba@yna.co.kr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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