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은행과 카드, 보험업계는 3년에 한 번씩 큰 장이 열린다. 바로 협회장 선거다. 금융사가 회원으로, 업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부와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정완규 여신금융협회장을 시작으로 11월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12월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과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까지 줄줄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재명 정부 들어 첫 금융협회장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지다 보니 금융권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위 '뜨는' 출신들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MB) 때 '고소영 인사'(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부에서는 서강대 출신 경제·금융인들이 모여 '서금회'를 만들어 움직였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는 관피아(관료+마피아)' 배제 바람이 불면서 금융권 요직에도 민간 출신이 대거 기용됐다. 문재인 정부는 학맥보다 진보 진영 인사들을 챙기면서 '캠코더'(캠프 출신·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검찰 출신들을 요직에 등용했다. 검찰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임명은 신문 1면을 도배했고, 그의 말 한마디에 금융권은 3년 내내 술렁였다.
이재명 정부의 금융권 인사는 '내부 중용' 및 '탈(脫) 모피아'가 두드러진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통령과 연이 있는 내부·비관료 인사들이다. 이 대통령의 사업연수원 동기로 대북송금 의혹 사건 등에서 변호를 맡았던 이찬진 금감원장과 중앙대 법대 동문인 박상진 산업은행장, 사시 동기 김성식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이다. 내부 발탁된 황기연 수출입은행장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지역 배경과 정치권의 광범한 인맥 등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은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에 국정기획위 경제1분과위원을 맡았던 인물이다.
금융권은 이번 협회장 선거야말로 현 정부의 인사 색깔을 분명히 확인할 기회라고 보고 있다. 국책은행 등 금융 공기업들이야 정부 정책을 서포트 한다는 면에서 어느정도 코드를 맞출 수 있는 인사를 내려보낸다 쳐도 퇴직 관료의 전유물이었다. 때로는 민간 출신이, 때로는 정치인이 꿰차기도 했던 금융협회장은 그야말로 정권의 구미에 따라 '맞춤형' 인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차기 회장 선출 과정에 있는 여신협회장 인선 결과는 향후 진행될 다른 협회장 선거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오는 19일 공모를 마감하고 27일 입후보자 서류 심사를 통해 숏리스트(후보군)를 압축한 뒤 다음 달 4일 입후보자 면접 후 회추위원 무기명 투표를 거쳐 과반수 득표가 나오면 단독후보가 결정된다.
누가 협회장에 지원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작년 10월 정완규 여신협회장 임기 만료 전후부터 당초 서태종 전 한국금융연수원장과 김근익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등이 거론됐으나 최근 "관료는 지원 조차 하지 말아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금융권에서는 이재명 정부 이후 단행한 금융 공공·유관기관장 인사에서 관료 출신들이 홀대받는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여신협회장은 물론, 생보·손보협회장 자리도 모피아에게 내어주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실려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온전히 민간 출신들의 순수한 경쟁이 되는 것일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여신협회장 공모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청와대에서 점 찍어둔 누가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 대형 금융지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거론되고 있다. 카드 사장 출신이 아닌 인물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민간 출신이면서 정권과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 뜨고 있는 현 정부의 '새로운 코드'에 들어맞는다.
그럼 이러한 '낙하산' 인사가 회장에 오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여신협회장은 회원사들이 무기명으로 투표해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당선된다. 카드사와 캐피탈사 각 7명이 포함된 회원사 14명과 감사 1명 등 총 15명으로 꾸려진 회추위원들의 각 한 표씩 행사한다. 저축은행중앙회장 선거처럼 80명의 대표들이 참여한다면 몰라도 소규모로 진행되다 보니 얼추 누구에게 표를 줬는지 짐작 가능하다. '불안한' 익명 투표인 셈이다. 소위 점지해 둔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을 경우 찍혀 후폭풍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대표도 있다. 모든 회원사가 한마음으로 밀고 있는 확실한 후보가 없는 이상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찍어 내려온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금융협회는 관련 금융업체들이 협력과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 단체다. 그럼에도 높은 곳에서 불어온 입김이 늘 작용해 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언제나 자리를 만들어 준다. 협회장은 연봉 5~8억원 이상으로 어지간한 은행장 연봉에 버금간다. 여기에 개인비서·차량 등 의전도 나쁘지 않고 각종 정부 행사 등에 단골 손님으로 뽐낼 수 있다 보니 꽤 챙겨주고 싶은 인물들이 거론되는 자리다. 이런 자리일수록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져야 '이 정부는 좀 다르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후보가 가진 뒷 배경이 아닌, 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부패한 이너서클' 지적으로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주 회장과 사외이사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지 못하도록 선임 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 당국 먼저 금융권의 인사가 공정하게 정립될 수 있도록 본보기를 보여줬으면 한다. 오는 19일 여신금융협회장 공모가 마감되고 27일 회추위에서 후보들을 심사하는 과정에 금융권의 눈이 쏠려있다는 걸 의식해야 한다.
(금융부장)
hjlee@yna.co.kr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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