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정부가 삼성전자 파업 사태를 두고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내놨다.
노사 자율 교섭을 촉구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결국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차질이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경제와 국가 전략산업 전체의 리스크임을 내세워 그에 걸맞은 책임을 강조했다.
정부는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삼성전자 파업과 관련해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그간 진행상황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13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첫 관계장관 회의를 소집한 지 나흘만에 열린 두 번째 회의다.
그 사이 삼성전자 노사는 총 파업을 사흘 앞둔 18일 오전 10시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차 사후조정 회의를 열기로 했다.
앞서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11일부터 13일 새벽까지 중노위 중재로 마라톤협상을 벌였지만, 성과급 지급 기준을 두고 첨예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렬됐다.
김 총리는 "18일 교섭은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노사 모두 이 자리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날 정부가 특히 주목한 것은 삼성전자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압도적 비중이다.
김 총리는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수출의 22.8%, 전체 시가총액의 26%를 차지하고 있으며 임직원 수만 12만명이 넘는 국내 최대 고용기업이자 1천700여개의 협력사와 함께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핵심 축"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국민 담화가 일반적인 노사 갈등 대응과 다른 지점도 여기에 있었다.
정부는 삼성전자 파업을 임금·근로조건을 둘러싼 개별 사업장 분쟁으로 보기보단 반도체 생산 라인이 멈출 경우 수출 감소를 비롯해 금융시장 불안, 협력업체 경영난, 국내 투자 위축으로 충격이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김 총리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은 단 하루만 정지돼도 최대 1조원에 달하는 직접적인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파업으로 웨이퍼 폐기가 발생하는 경우 경제적 피해는 최대 1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도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뒷받침했다. 수백개의 초정밀 공정이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반도체 생산은 한 번 멈추면 단순히 다시 전원을 켜는 방식으로 복구되지 않는다. 공정 중 제품 폐기와 라인 안정화 기간을 감안하면 짧은 중단도 수개월의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 사안을 AI 반도체 패권 경쟁과 연결했다.
김 총리는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글로벌 AI 반도체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어렵게 확보한 전략적 우위를 경쟁국들에 통째로 내어주게 된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곧 삼성전자의 HBM4 양산과 파운드리 회복 국면을 국가경제 반등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김 총리는 담화 말미에 "파업으로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국민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예고했다.
긴급조정은 노동쟁의가 국민경제나 국민 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발동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동안 정부의 긴급조정권은 철도·발전·의료 등 공공성이 큰 영역에서 주로 거론돼 왔다.
정부가 민간기업인 삼성전자 파업에 이 카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반도체를 사실상 국가 기간 인프라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물론 정부는 노사 양측 모두에 책임을 물었다. 노조에는 파업 대신 대화와 타협을, 사측에는 책임 있는 교섭과 상생 해법 마련을 주문했다.
그럼에도 이날 정부가 발표한 메시지는 삼성전자라는 기업의 무게는 더 이상 기업 내부의 문제로만 다룰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이번 담화는 이재명 정부의 산업정책 기조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노동 존중을 강조해온 정부가 반도체 파업 앞에서는 국민경제와 산업안보를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반도체, 더 나아가 삼성전자가 갖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셈이다.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는 "18일 교섭은 단순한 임금협상이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신뢰와 정부의 산업안보 대응력을 동시에 시험하는 분기점"이라며 "노사정 모두가 사태 해결을 위해 자리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jsjeong@yna.co.kr
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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