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민재 기자 = 영국 국채(길트) 금리가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재정 우려, 높은 인플레이션이 국채 매도를 부추겼다. 에너지발 물가 충격에 중앙은행도 추가 긴축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채권시장에 약세 압력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 커진 정치 불확실성…끈질긴 인플레이션
15일(현지시간)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장보다 18.73bp 높아진 5.1817%로 마감해 2008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2년물 금리는 14.90bp 상승한 4.5613%를 찍었고, 초장기물인 30년물 금리는 19.77bp 뛴 5.8536%로 지난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정지출 통제를 강조해 온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가운데 집권 노동당 내부 권력 경쟁이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풀이된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스타머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등 영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국채 매도를 부추기고 있다.
이에 더해 앤디 버넘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이 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점도 금리에 상승 압력을 가했다. 확장 재정정책을 선호하는 버넘 시장이 차기 총기 유력 주자로 떠오른 가운데, 새 지도부가 들어설 경우 재정지출이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길트를 투매했다.
영국 국채 금리는 지방선거 이전부터 이미 급등하고 있었다. 특히 길트 금리는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 국채 금리보다 오름세가 가팔랐는데, 이는 현재 중동 전쟁이 영국의 경제와 재정 전망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영국의 끈질긴 인플레이션과 높은 에너지 비용에 대한 우려도 국채시장 약세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3% 상승해 여전히 중앙은행 목표치 2%를 웃돌고 있고 전월치(3%)도 상회했다. 인플레이션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는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연료 가격이 지목됐다.
채권시장은 잉글랜드은행(BOE)이 올해 금리를 인하하는 대신 인상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 BOE는 지난해 12월 기준금리 인하를 끝으로 올해 들어선 꾸준히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출처 : 연합인포맥스
◇ "불확실성 해소까지 길트에 리스크 프리미엄"
전문가들은 당분간 영국 국채시장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OE)의 앤드류 굿윈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의 높은 인플레이션 전망과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10년물 국채 금리 5% 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시장에선 노동당 내 권력 구도와 재정정책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베렌버그의 앤드류 위샤트 이코노미스트는 "누가 스타머의 후계자가 될지, 그들이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영국 자산에 '리스크 프리미엄'을 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버넘 시장이 실제 총리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영국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버넘이 총리가 될 가능성을 현재 시세에 반영하고 있고, 스타머 총리 체제가 추가로 흔들리거나 확장재정 우려가 더 커질 경우 장기구간을 중심으로 금리에 상방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CE)는 보고서에서 "스타머 총리와 레이첼 리브스 재무장관이 축출된다면 전반적인 길트 금리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고서는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더라도 현재의 재정적 제약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며 "그들이 중기적인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데 더 성공적일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프리스의 모히트 쿠마르 전략가는 "기본 시나리오는 스타머가 질서 있게 물러나고 버넘이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장이 우려하는 점은 버넘이 스타머보다 더 좌파 성향을 띨 수 있고, 그 결과 재정적자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 우리는 수익률곡선 스티프닝 전망과 함께 파운드화 비중 축소 의견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서 BOE는 조건부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스와티 딩그라 BOE 통화정책위원은 4월 회의 의사록에서 "더 크고 장기적인 에너지 충격이 발생할 경우 더 급격한 정책적 선택에 직면할 수 있다"며 긴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금융시장은 BOE 기준금리가 6월에 25bp 인상된 뒤 4.25%까지 한 차례 추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3월 전했다.
JP모건은 BOE가 올해 4월과 7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봤지만 '시장의 금리 인상 전망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앤드루 베일리 BOE 총재의 지적에 전망을 수정했다. JP모건의 앨런 몽크스 영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6월에 한 차례 금리 인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다만 사라 브리든 BOE 부총재는 지난달 중앙은행이 경제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고, BOE가 영원히 기다릴 수는 없겠지만 6월이나 7월에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다며 시장의 조기 금리 인상 우려를 일부 완화했다.
휴 필 BOE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리를 신속하지만 완만하게 인상하면 이란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영국 경제에 고착될 위험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사진 제공
mjlee@yna.co.kr
이민재
mjlee@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