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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숙의 시선] '1천조 달러' AI 베팅과 삼성의 파업

2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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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인공지능(AI)이 인류 경제에 얼마나 큰 부를 가져올 것인지를 두고 세계 경제학자와 기술 전문가들의 전망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RAND) 연구소의 AI 경제학 전문가 안톤 쉔크(Anton Shenk)는 최근 이를 '천조 달러짜리 불일치(The Quadrillion-Dollar Disagreement)'라고 불렀다.

챗GPT 등장 이후 3년간 제시된 AI의 향후 10년 경제 성장 기여도 전망은 최소 0.1%에서 최대 30%까지 벌어져 있다. 이 차이가 2035년까지 누적되면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의 간극은 1천조달러, 우리 돈으로 약 150경 원에 달한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AI의 거시경제적 파급력을 두고 최고 권위의 석학들 사이에서조차 예측치가 극명하게 갈린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아세모글루 MIT 교수가 향후 10년간 미국의 생산성 향상률을 고작 0.71%로 내다본 반면, 안톤 코리넥 버지니아대 교수는 연간 GDP 성장률이 18%에 달할 것이라는 야심 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처럼 무려 25배에 달하는 격차는 기술 자체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AI가 인간의 복잡하고 맥락 중심적인 고부가가치 업무 영역까지 완전히 치고 올라올 수 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숫자의 크기가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이미 어느 한쪽의 미래에 베팅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가져올 폭발적 성장을 믿고 재정과 투자를 앞당기는 쪽도 있고, 아직은 과열된 기대에 불과하다며 속도를 조절하는 쪽도 있다. 어느 쪽이든 오판의 비용은 작지 않다.

존재하지 않을 호황을 믿고 돈을 쏟아부으면 재정과 기업 재무가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기하급수적 변화가 실제로 도래했는데도 준비하지 못하면 산업 주도권과 고용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2차 사후조정 회의 참석하는 최승호 노조 위원장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쉔크는 이 차이를 만드는 핵심 변수 중 하나로 기술 그 자체보다 '조직적 마찰(Institutional Friction)'로 설명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나와도 제도와 조직, 문화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생산성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AI의 잠재력이 현실의 경제 성장으로 바뀌려면 반도체, 전력,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 보상 체계, 조직 신뢰, 노사 관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 대목에서 삼성전자의 파업 사태를 떠올려 보면, 이를 단순히 개별 기업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삼성전자는 지금 AI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을 상대로 주도권 회복을 노리고 있고, 엔비디아를 비롯한 핵심 고객사의 품질 검증을 통과하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AI 투자가 장기 슈퍼사이클로 이어지든 일시적 조정기를 거치든, 향후 2~3년이 삼성 반도체의 다음 10년을 좌우할 골든타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점에 삼성 내부에서는 정반대의 신호가 나오고 있다. 노조는 투명한 성과급 산정과 합리적 보상, 명시적인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회사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만큼 위기 극복과 생산 안정이 우선이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모두 나름의 명분을 갖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삼성은 가장 빠르게 달려야 할 시점에 내부 마찰을 키우고 있다.

삼성은 오랫동안 '초격차'라는 말로 상징되는 강한 실행력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무노조 경영 폐기 이후 달라진 노동 환경에 맞는 새로운 노사 질서를 충분히 정착시키지 못했다. 성과급 산정 방식에 대한 불신, 의사결정 과정의 불투명성, 현장과 경영진 사이의 거리감은 누적돼왔다. 그 불신이 지금 파업이라는 형태로 표면화된 셈이다.

기술 기업에서 신뢰는 비용이 아니라 인프라다. 최고 인재들이 납득할 수 있는 보상 체계가 있어야 몰입이 생기고, 현장이 회사의 방향을 믿어야 위기 때 속도가 난다. 반대로 신뢰가 깨진 조직은 아무리 좋은 장비와 자본을 갖고 있어도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실행력이 떨어진다. 쉔크가 말한 '조직적 마찰'이 바로 이런 형태로 나타난다.

삼성전자, 세계 최초 HBM4 양산 출하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의 경쟁 상대는 국내 기업만이 아니다. 엔비디아는 AI 생태계의 표준을 장악하며 시장의 룰을 만들고 있고, TSMC는 대만 정부와 산업 생태계의 전폭적 지원 속에 파운드리 지배력을 더 강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선점 효과를 누리며 고객과의 관계를 넓히고 있다.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삼성의 내부 갈등은 사소한 변수가 아니다. 속도의 차이가 곧 시장점유율의 차이로 이어지는 국면에서는 조직의 마찰도 경쟁력의 손실이다.

물론 책임을 어느 한쪽에만 돌릴 수 없다. 경영진은 과거 고도성장기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과가 나면 어떻게 나누고, 부진할 때는 어떤 기준으로 부담을 나눌 것인지 투명한 규칙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처럼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 보상 체계의 불신은 곧 경쟁력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노조 역시 AI 반도체 전쟁이라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고객사의 검증, HBM 수율 개선, 첨단 공정 투자,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맞물린 시기에 파업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회사뿐 아니라 국내 반도체 생태계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정당한 요구와 책임은 함께 가야 한다.

AI가 만들어낼 미래가 1천조달러의 기회가 될지, 과장된 기대의 거품으로 끝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기회를 잡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과 극단적인 격차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점이다. (산업부 차장)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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