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제공]
(서울=연합인포맥스)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이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자 글로벌 채권 시장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 전에도 큰 기대는 없었지만, 이란과 관련해 양측이 뾰족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드러나자 미국과 이란의 교착상태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트럼프는 회담 전부터 중국에 이란과 관련한 부탁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묘한 발언을 했고, 중국은 회담 직후 미국이 추진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규탄 결의안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 유가는 110달러 전후로 치솟았고 금융시장은 '100달러 유가'가 장기화될 가능성,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우려를 반영하기 시작한 듯하다.
이란 전쟁 청구서가 이제 본격적으로 금융시장에 날아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악영향이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동안 전략 비축유 방출, 재고 소진 등으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수요 억제를 위해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며, 소비자들은 고갈돼 가는 원유 공급량을 놓고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 바깥 해상에 있던 원유들은 이미 인도가 완료됐고, 정유시설 재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세계 원유 소비량이 생산량보다 일일 약 600만배럴 많다고 추산하고 있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할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한다.
채권 금리를 급등(채권 가격 급락)시킨 것은 유가발 인플레이션 우려만은 아니다. 영국과 일본의 재정 우려도 글로벌 금리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강조하는 앤디 버넘 그레이터맨체스터 시티 시장이 차기 영국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커지자 영국 국채에 대한 투매가 나타났다. 버넘 시장은 공공의료 강화와 철도·교통 공공성을 강조하고 긴축 재정은 비판해 온 인물이다.
영국의 재정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으로, G7 평균보다 높고 독일(약 2.7%)의 두 배 가깝다.
일본에서는 추경 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올여름 가격 인상이 예상되는 전기·가스 요금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논의 중인데 본예산 예비비만으로는 재원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현지 매체들은 추경을 위해 일본 정부가 신규 국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의 GDP 대비 정부 부채 규모는 약 206~230%로 G7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100% 초중반을 기록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격차가 크다.
유가 급등과 재정 우려라는 '환장의 콜라보'에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18일 한때 2.8%대로 올라 1996년 10월 이후 2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초장기물인 30년물 금리는 4.2%에 근접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영국 10년물 금리는 5.2% 가까이 급등해 금융위기 수준으로 돌아갔다.
미국 10년물 금리는 마지노선이라 불리던 4.5%를 넘었고, 30년물 금리는 5%를 넘어 2007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 올해 12월 말까지 미국 기준금리가 동결될 확률은 55.5%, 25bp 인상될 확률은 36.2%를 기록하고 있다.
출어: 연합인포맥스.
인플레이션과 재정·부채에 대한 우려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최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에 따른 채권금리 급등이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란 전쟁 이후 유가 급등에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오랜기간 현행 수준에 묶어두거나 심지어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미국과 아시아 주요 증시는 호황을 보였었다.
AI 붐에 반도체주가 괄목할만한 실적을 거두면서 미국, 일본, 한국, 대만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했다.
하지만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글로벌 증시도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상 처음 50,000을 넘었던 다우 지수는 49,000대로 후퇴했다. 63,000을 넘었던 일본 닛케이 지수는 60,000선으로 내려왔고, 한국 코스피 지수도 8,000을 찍은 후 7,500대로 물러났다. 대만 가권 지수는 42,000대에서 40,000대로 후퇴했다.
트럼프가 그동안 이란에 강경한 스탠스를 보이며 예상보다 길게 전쟁을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채권금리 급등이 지속될 경우 트럼프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작년 4월 상호관세로 미국 국채금리가 발작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채권시장을 주시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트럼프는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고 평가했다.
채권금리 급등 등으로 트럼프가 수세에 몰리면 이란으로서는 불리한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게 된다. 이는 고유가를 고착화시키고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와 채권금리를 더욱 끌어올리는 부정적인 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은 지난 16일 "진짜 고통은 미국 국채 금리와 모기지 금리가 뛰기 시작할 때 올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트럼프는 채권시장의 경고를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백기를 들게 될까. 채권금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국제경제부장)
jhmoon@yna.co.kr
문정현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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