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은 피했지만 성과급 배분 논쟁은 본격화
메모리 호황 과실 놓고 사업부·주주·사회 환원 갈등 확산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삼성전자[005930] 노사가 초과이익성과급(OPI)을 둘러싼 잠정 합의에 도달하면서 총파업 리스크는 일단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이번 협상은 기업 성과급의 성격과 배분 기준을 노사 교섭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과제를 남겼다.
성과급은 통상 회사나 사업부가 일정한 경영 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때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보상이다. 기본급이나 정기상여처럼 노동 제공 자체에 직접 대응하는 임금이라기보다 회사의 수익성, 사업부 실적, 경영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되는 성과 배분 성격이 강하다.
문제는 반도체 시장 호황으로 예상보다 큰 초과이익이 발생하면서 이를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사업부별 실적에 따라 차등 배분할지, 아니면 공동 성과로 보고 일정 부분을 공유할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번 협상의 핵심이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DS 성과급 배분 막판 쟁점…'공동 성과냐 사업부 성과냐'
22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협상의 막판 쟁점은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성과급 재원의 배분 방식이었다.
노조는 DS부문 성과급 재원의 70%를 부문 전체에 공통 배분하고, 30%만 사업부별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자는 안을 요구했다. 메모리 사업부가 벌어들인 성과라도 연구개발, 생산, 품질, 지원 조직 등 DS 전체 경쟁력의 결과인 만큼 일정 부분은 구성원이 함께 나눠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사측은 실적 기여도가 큰 사업부와 적자를 이어가는 사업부를 같은 기준으로 보상하는 것은 성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결국 최종안은 부문 공통 40%, 사업부별 60%로 결정됐다. 사측의 요구가 더 크게 반영됐다.
올해 DS부문의 실적 개선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범용 D램 가격 상승 등으로 메모리 사업부에 집중돼 있다. 반면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부는 수익성 회복에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다. 메모리 사업부가 창출한 이익을 DS 전체가 어느 수준까지 공유할 수 있느냐가 내부 갈등의 축이 된 배경이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메모리·비메모리·DX까지…드러난 내부 온도차
이번 협상 과정에서는 사업부별 온도차도 노출됐다.
성과급 제도화 요구는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커졌지만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이해관계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DS 내부에서도 메모리와 비메모리 간 입장이 달랐으며, 디바이스경험(DX)부문 등 비반도체 사업부 직원들과도 의견이 엇갈렸다.
메모리 사업부에서는 실적 기여도에 맞는 차등 보상을 요구할 수 있고,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부에서는 DS 전체의 공동 기여를 성과 배분에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같은 DS 안에서도 성과급을 '사업부별 실적의 결과'로 볼지, '반도체 부문 전체의 공동 성과'로 볼지에 따라 이해관계가 갈리는 셈이다.
DX 부문 직원들은 반도체 중심의 임단협 쟁점만 부각되고 자신들의 의제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제기해왔다. 이 같은 온도차는 일부 조합원들의 노조 탈퇴 움직임으로도 이어졌다.
삼성전자가 OPI 제도를 손보려면 사업부별 기여도를 어떤 비율로 반영할지에 대한 내부 합의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번 협상이 끝나더라도 같은 쟁점이 다음 임단협에서 재연될 수 있는 이유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주주 갈등으로 번진 성과급 논쟁…국민배당금 요구까지
주주 반발도 삼성전자에는 부담으로 남았다.
삼성전자는 국내 대표 국민주다. 반도체 업황 회복과 AI 메모리 슈퍼사이클 기대가 주가에 반영되는 국면에서 총파업 리스크가 불거지자 주주들 사이에서는 "성과급은 누가 부담하느냐"는 불만이 커졌다.
일부 주주들은 노조의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요구가 사실상 주주 배당과 투자 재원을 잠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의 이익은 임직원 보상의 원천인 동시에 연구개발(R&D), 설비투자, 배당, 자사주 매입 등으로 배분돼야 하는 재원이다. 성과급 재원이 고정비처럼 제도화될 경우 주주환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논쟁은 '성과급 대 임금' 차원을 넘어 회사 이익을 임직원 보상, 미래 투자, 주주환원 사이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됐다.
주주단체는 영업이익 규모에 연동하는 성과급은 회사의 이익 분배에 관한 사항인 만큼 임금으로 보기 어렵고, 상법상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다는 것은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왔다"며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했다. 방식과 실현 가능성을 떠나, 성과급 논쟁이 사회적 환원 이슈로까지 확장된 셈이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정부까지 움직인 파업 리스크…韓 경제까지 흔들어
정부가 긴급조정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도 삼성전자와 반도체 산업이 가진 국가적 중요성 때문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대국민 담화에서 삼성전자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2.5%에 달하고, 국민 주주가 460만명, 협력업체가 1천700여개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업이 개별 기업의 노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연속 공정으로 운영된다. 단기간 파업도 생산 일정과 고객사 납기, 소재·부품·장비 협력망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정부는 공장이 하루만 멈춰도 최대 1조원의 직접 손실이 발생하고, 웨이퍼 폐기 등으로 피해가 커질 경우 최대 100조원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이번 잠정 합의로 당장의 생산 차질 우려는 낮아졌지만 최종 관문은 조합원 총투표다. 합의안이 가결되면 올해 임금·단체협상은 사실상 마무리되지만, 부결될 경우 총파업 가능성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번 협상은 파업이라는 급한 불을 끈 과정인 동시에 기업들의 성과급 제도화 논쟁이 본격화됐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AI 메모리 호황이 실적으로 연결될수록 성과 공유 요구는 커지고, 사업부별 실적 격차가 커질수록 내부 배분 갈등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ysyoon@yna.co.kr
윤영숙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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