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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권 칼럼] '그들만의 잔치'가 끌어올릴 물가

2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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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내년 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에서만 최소 50조원 이상의 성과급이 지급된다. 증권가 예측대로 삼성전자가 300조원, SK하이닉스가 250조원의 영업이익을 낸다면 두 회사의 성과급 규모는 각각 31조5천억원과 25조원이 된다. 두 회사는 각각 영업이익의 10.5%와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확정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성과급 전부를 자사주로 지급하고, 그중 3분의 1만 바로 매각할 수 있도록 한 것을 고려하면 실제 현금으로 풀릴 수 있는 돈은 35조원을 다소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8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도 정부 예산의 4~5% 수준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올해 정부 전체의 연구개발(R&D) 예산 35조5천억원과 맞먹는다. 물론 상당 규모의 성과급에 비례해 근로소득세 형태로 세금을 납부하게 돼 실제 풀리는 돈은 더 적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직원들이 받게 될 성과급을 모두 즉각적으로 소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를 통해 시중에 돈이 풀리게 될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부동산 매입이 될 수도 있고, 자산시장으로 다시 환류될 수도 있겠지만 상당 규모는 소비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소비심리는 들썩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를 보면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보다 6.9포인트(p) 상승한 106.1을 기록했다. 작년 6월 6.9p 오른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을 크게 웃돌고, 반도체 호황 흐름이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으로 확산하고, 주식시장의 호황세가 가파르게 지속하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중동전쟁에 따른 고유가와 고환율에 따른 공급 측 물가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소비심리 개선에 따른 수요 발 인플레이션 견인 효과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특히 반도체 호황 국면 속에서 성장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경기 회복에 따른 소비·투자가 동시에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점은 그간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수요 측 물가 압력 우려를 키운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쟁이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기업들의 임단협 상황이 어떤 결론을 낼지 불확실성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총수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소비심리 회복과 시중 유동성 확대는 결국 물가에 상방 요인이 될 수 있다.

국내외 연구기관과 투자은행(IB)들은 올해와 내년 우리나라 성장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그런데 물가 전망치 역시 크게 높이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2.5%로 대폭 올리면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2.1%에서 2.7%로 0.6%포인트(p) 높였다. 내년 물가가 2.2%로 둔화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근원물가 상승률은 2.3%로 봤다. 증권가에서는 한국은행도 올해 물가 전망치를 2.7%~2.8% 수준으로 상향 조정할 것으로 예측한다. 중동전쟁이 종전하고 국제유가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게 된다면 내년도 물가 수준은 올해보다 낮겠지만, 한은의 물가 목표 수준을 중장기적으로 상회하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은 크다. 한은이 이날 제시한 향후 1년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전월보다 0.1%p 하락했지만 2.8%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과 성과급 확대 기류가 물가를 자극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한은이 2002년 7월 발표한 '우리나라의 물가-임금 관계 점검' 보고서는 현재의 이러한 상황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한은은 임금과 물가의 연쇄 상승 현상은 고인플레이션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2003년 1분기부터 2022년 1분기까지 통계 분석을 한 결과 임금의 물가 영향은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는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이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에서 유지됐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시계열을 넓혀 1990년대부터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임금 충격의 물가 영향은 저인플레이션 국면보다 고인플레이션 국면에서 크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주요 15개 선진국의 실증 연구에서도 동일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물가 오름세가 높아지면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지고, 물가와 임금 간 상호작용도 강화되고,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한은의 결론이었다.

물론 이에 반하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노동연구원이 2015년 발간한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최저임금이 10% 인상될 경우 전체 노동자 임금은 약 1% 정도 오르고, 물가는 약 0.2%~0.4% 상승한다고 분석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OECD 국가의 임금은 평균 6.3% 올랐는데 같은 기간 연평균 물가 상승률은 2.53%에 그쳤고, 2011년부터 2020년까지는 임금이 8.7% 상승했지만, 물가 상승률은 1.86%로 더 떨어졌다. 다만, 이번의 경우는 단순히 임금 인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규모의 예상치 못했던 성과급이 더해지는 것이고 시중에 현금으로 풀리면서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분석 결과들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채권시장에서는 고성장과 고물가 상황을 고려할 때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동발 고유가 리스크로 인한 고인플레이션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탓이다. 하지만 임금과 성과급에 따른 파급 경로가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그간 간과돼 온 부분이다. 성과급 지급과 소비 확대가 당장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제한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긴 하지만, 성장과 소비 심리 개선 속에 수요 측 압력까지 가세한다면 현재의 고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가뜩이나 복잡한 함수인 재정과 통화정책에 또 다른 변수가 끼어들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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