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인포맥스) 2018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흑인 남성 두 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당시 매장에 있던 매니저가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여론은 들끓었다. 스타벅스는 그해 5월에 미국 전역 8천여 개 매장에서 하루 날을 잡아 오후 한나절 동안 영업을 중단하고 전 직원 17만5천명을 대상으로 인종차별 방지 교육을 실시했다.
당시 외신과 시장 분석가들은 스타벅스가 영업을 전면 중단해 발생한 매출 손실 규모를 약 1천2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28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과를 완성한 대표적인 예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두 번째 사과문을 발표했다. 5·18 다음 날 첫 번째 사과문을 낸 지 일주일만이다. 언론에 직접 나섰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빠진 게 있었다. 본인의 희생을 감수한 진정성 있는 행동이다.
첫 번째 사과문은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 날 오전에 신속하게 발표됐다. 사과문의 핵심은 모두 본인의 잘못이었다는 말이었다. 업계에서도 신속한 사과에 더해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한 점을 높이 샀다. 유통업계 총수가 직접 고개를 숙이는 일은 흔치 않다. 오너가 전면에 나서 모든 책임을 안겠다고 한순간만큼은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사과문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였다. 1차 사과문에서 정 회장은 세 가지를 약속했다. 발생 경위와 승인 절차의 철저한 조사와 투명한 공개, 전 계열사 마케팅 검수 재점검, 전 임직원 역사의식 교육이 그것이다.
2차 사과문은 직접 언론 앞에 섰다는 점 외에 달라진 게 없었다.
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데 시간이 걸린 이유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은 데 대한 사과가 아니라 지연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지면을 할애했다. 후속 조치는 '내부 시스템과 위험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재점검하겠다'는 선언으로 대체됐다. 1차 사과문 당시와 비교해 오히려 후퇴했다.
스타벅스코리아가 공개한 자체 조사 결과는 이번 사태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는 커머스팀이 임원과 경영진에게 보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삽입했다. 행사일인 5월 18일은 텀블러 입고 일정과 온라인 매출 특성을 고려해 실무진이 결정했지만, 대표이사까지 결재가 올라간 것은 행사 기획안 전체였다. 문구 삽입은 그 이후 실무 단계에서 이뤄졌다. 의도적 기획이 아니라는 해명의 근거다.
그렇다고 이 설명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결재 체계가 있어도 실무진이 민감한 문구를 별도 보고 없이 넣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다. 검수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2차 사과문 중반부에서 정 회장은 전국 매장 직원들을 향한 선처를 호소한 점이다. 묵묵히 일하는 파트너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달라는 내용이다. 피해자를 향한 사죄의 자리에서 갑자기 직원 보호론이 등장했다. 사과의 초점이 흔들리는 지점이다.
기업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피해자 중심이다. 사과의 무게중심이 피해자가 아닌 내부 구성원 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대중은 진정성보다 조직 보호 본능을 먼저 읽는다. 과거 대형 유통기업들의 사과 전례를 돌아봐도 피해자보다 내부를 먼저 챙긴 사과가 여론의 역풍을 맞지 않은 경우는 드물었다. 사과의 언어보다 사과 이후의 행동이 브랜드 신뢰를 결정한다는 것은 유통업계가 여러 차례 경험으로 확인한 공식이다.
자체 조사 결과 해당 마케팅이 대표이사까지 승인됐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바로 윗선에 해당하는 본인의 진퇴에 관한 언급은 두 차례 사과문 어디에도 없다. 총수 일가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오너 체제의 특성상 의사결정 책임의 정점은 결국 회장 본인이다. 그 지점을 비껴간 사과는 구조적으로도 완결되기 어렵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139480]·신세계백화점·스타벅스코리아 등 일상 소비의 최접점에 있는 브랜드들을 거느리고 있다. 소비자들이 매일 발을 딛는 공간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가 남긴 브랜드 신뢰의 균열은 단순한 총수 개인의 이미지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의 신뢰는 한번 금이 가면 복원에 몇 배의 시간과 비용이 든다.
기업 최고경영자가 반복해 머리를 숙이는 것은 무겁고 값진 일이다. 하지만 사과는 책임의 완결이 아니라 시작이다.
두 번의 사과문이 남긴 것은 진정성의 무게가 아니라 행동의 부재다.
정 회장은 2차 사과문 말미에 오늘의 사과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말이 아닌 행동이어야 한다. (산업부 차장)
[출처: AP]
msbyun@yna.co.kr
변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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