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기술은 단연 인공지능(AI)이다. 다만 같은 AI를 도입하고도 기업마다 모습은 크게 다르다. 어떤 곳은 기존 업무에 도구 하나를 추가하는 수준에 그치고, 어떤 곳은 일하는 방식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활용방식, 더 정확히는 조직의 문제다.
과거 기업에서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비교적 명확하게 나뉘어 있었다. 기획자가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개발자가 이를 구현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갈등은 일종의 '고질병'처럼 여겨졌다. 기획자는 개발자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속도가 느리다고 불만을 가졌고, 개발자는 기획자가 현실을 모른 채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반박했다. 서로의 언어와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기획은 '문서'로 전달되고, 개발은 '코드'로 구현되다 보니 그사이에는 늘 해석의 간극이 존재했다. 작은 기능 하나를 두고도 여러 차례 회의와 수정이 반복되는 일이 흔했다. 속도를 높이려 하면 품질이 흔들리고, 품질을 지키려면 일정이 밀리는 딜레마가 반복됐다.
AI는 이 오래된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다. 이제는 제품을 기획하는 사람이 직접 코드를 작성해 시제품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개선을 반복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AI 코딩 도구의 발전으로 아이디어를 곧바로 구현하는 장벽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문서로 전달되던 기획이 이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으로 바뀌고 있다. 말로 설명하던 시대에서 '직접 만들어 보여주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제 정의부터 해결까지의 사이클 자체를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기능이 필요하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개발팀에 전달한 뒤 결과를 기다렸다면, 이제는 기획자가 직접 만들어보고 바로 수정하면서 가설을 검증한다. 실험의 비용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협업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기획자와 개발자의 역할 구분이 흐려지면서, 양쪽의 갈등도 상당 부분 줄어든다. 서로를 설득하기보다, 빠르게 만들어보고 결과로 논의하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논쟁의 중심이 '누가 맞느냐'에서 '무엇이 더 잘 작동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학습속도다. 조직 내에서 AI 활용 경험이 빠르게 공유되면서 'AI 리터러시'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누군가 만든 프롬프트나 자동화 방식, 문제 해결 접근법이 곧바로 팀 전체의 생산성으로 확산한다. 과거에는 개인의 노하우가 개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좋은 사례가 조직 전체의 자산이 된다.
물론 '잉여 인력' 문제에 대한 고민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AI가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기존 역할 중 일부는 축소되거나 재정의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력을 줄이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필요한 역할'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조직일수록 이 문제를 더 크게 겪게 될 것이다.
결국 경쟁의 축은 기술에서 조직으로 이동하고 있다. AI를 단순한 생산성 도구로 보는 기업은 기존의 역할 분담과 의사결정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이 경우 AI는 일부 업무를 빠르게 처리해주는 '보조 수단'에 머문다. 반면 AI를 중심으로 일하는 방식을 재설계하는 기업은 조직 자체를 바꾼다. 역할보다 문제 해결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고, 직군 간 경계를 낮추며, 실험과 반복을 빠르게 허용한다.
특히 의사결정 구조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조직은 현장 단위에서의 판단과 실행을 빠르게 허용한다. 반면 위계가 강한 조직에서는 여전히 보고와 승인 절차가 중심이 된다. 이 경우 AI로 생산성을 높이더라도 전체 의사결정 속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 조직이 경직돼 있을수록 AI는 기존의 비효율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과거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병목이 기술의 도입으로 오히려 더 명확해지는 것이다.
앞으로 기업 간 격차는 누가 더 좋은 AI를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일하는 방식을 AI에 맞게 바꾸었느냐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역할 간 경계를 낮추고, 빠른 실험을 허용하며, 학습을 조직 전체로 확산시키는 구조를 가진 기업이 유리하다. 반대로 기존의 직무 구분과 위계를 유지한 채 AI만 도입하는 기업은 기대만큼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
AI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재설계 도구'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술 도입보다 조직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승자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 아니라, 기술에 맞게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기업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과 조직에 있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장순환
sh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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