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김용범 정책실장이 13일 호텔현대 바이 라한 울산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K-조선 미래비전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2026.5.13 superdoo82@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성공의 비용'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현재의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에 대한 인식과 앞으로의 대응 방향에 대한 글이었다. 대체로 경제 상황에 대한 분석에 대해선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다만, 왜 성공의 비용이라는 논쟁적 제목을 달았는지에 대해선 이해하기 어렵다. 김 실장은 사실상 우리나라 경제를 총괄하는 최고위 당국자다. 그의 생각과 방향성에 대해 시장은 늘 주목한다. 그런데 국민 배당금, 성공의 비용과 같은 불필요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핵심을 분산시킨다. 메시지 관리의 실패다. 경제는 정답이 없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해석이 다르고 그에 따른 대응책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다. 늘 가치 중립적인 입장일 수는 없다. 하지만, 1이 99를 덮게 해선 안 된다. 정책 당국은 분산된 생각들을 모아 방향성을 만들어야 하는 곳이지, 생각들을 분산시켜 논쟁을 촉발하는 곳은 아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좀 아쉽다.
김 실장의 말처럼 반도체 호황 속에 기업들의 실적은 고공행진하고, 수출도 대호황기를 맞이하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는 매우 큰 상황이다. 그런데 물가는 뛰고 금리도 역대급으로 오르고 있는 데다 환율마저 새로운 레벨로 치솟는 부조화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도 이 미스테리한 상태를 두고, 갑론을박이다. 김 실장은 아마도 이러한 상황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마찰적 상황에 대해 오독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 것 같다. 뭐 그 점에 대해선 이해하고 넘어가자. 정책 최고위 당국자 입장에서 걱정할만한 이유는 된다고 보인다. 이에 대해 추가로 논쟁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부분들을 차치하고, 김 실장이 이번에 올린 글을 보면 향후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경제 정책, 특히 시장 정책을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힌트가 많이 담겨 있어 주목할만하다.
1. 공급 측 물가 압박…재정 역할이 더 중요하다
중동전쟁이 언제쯤 끝날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하지만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헤드라인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어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그렇더라도 전쟁이 언젠가 끝나기는 하겠지만 경제적 해악은 계속해 점증하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이 초래한 인플레이션 압박은 실물과 민생 경제 전반에 널리 확산하고 있다. 유가 상승이 촉발한 공급 충격발(發) 인플레 상승은 결국 시차를 두고 가격에 전가되면서 민생경제를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공급 물가 상승이 물품 가격으로 전이되고 소비자 물가의 본격 상승이 현실화하면 결국 소비 위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경기 회복에 악재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용범 실장은 "공급충격에서 비롯된 물가 상승은 통화정책만으로 제어하기 어렵다"고 했다. 통상 인플레 상승은 금리 인상을 통해 억제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현재의 물가 상승은 분명 전쟁에서 비롯된 공급발 요인이 압도한다.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로 상승 여파가 이어지겠지만, 파급도를 떨어뜨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세제 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도로 읽힌다. 현재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석유류 최고가격제 등 에너지 안정정책과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 각종 재정·세제 지원 정책은 중동전쟁의 여파가 잦아들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2. 금리 인상 속도전은 부작용…인내하며 하더라도 천천히
통화정책만으로 제어하기 어렵다는 김 실장의 인식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으로도 읽힌다.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는 이미 3~4차례의 금리 인상을 반영한 수준에서 형성돼 움직이고 있다. 인플레 우려가 커지고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긴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연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예측 등이 얽혀 작용한 결과다. 국채 금리의 상승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사실 정부의 대응도 쉽지 않다. 한국은행도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연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금리 인상은 운신의 폭을 줄이게 하는 요인이다. 금리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게 되는 계층은 아무래도 경제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과도한 가계부채 여건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결국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재정 활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에 따른 국고채 금리 상승은 정부의 재정 여력을 축소할 수도 있다. 실적 개선을 기반으로 기업들의 투자에 물꼬가 트이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강한 부정적 요인이다. "금리 상승 압력을 무조건 억누르는 접근도, 반대로 고금리를 방치하는 접근도 모두 위험하다"라는 김 실장의 언급은 현재의 딜레마 상황에 대한 고민으로 보인다.
이는 한은의 금리 인상을 용인할 수는 있겠지만, 속도가 빨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재정 당국과 통화당국 간 정책조합(Policy mix)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이 인플레 방어에만 매몰되지 말고 금융안정 측면, 재정의 적극적 개입 측면도 고려해 통화정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공급발 물가 상승은 정부가 재정을 통해 가급적 방어할테니 한은은 최대한 인내할 필요가 있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시중금리 상승에 대해선 정부의 국고채 발행량 조절과 바이백, 한은의 국고채 단순 매입 등을 통해 속도와 변동성을 제어하는 시장안정조치로 대응하는 게 낫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3. 韓시장 ATM 역할 막는다…환율 레벨보다 자본유출입 관리
김 실장의 글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환율과 관련된 것이다. 달러-원 환율은 이미 1,500원 위로 올라선 상태다. 반도체 수출 호황에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역대급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환율은 외환위기 급 레벨이다. 최근 시장 지표 중 가장 미스테리한 것도 환율 레벨이다. 1,500원 레벨이 뉴노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수출업체들엔 기회일 수 있겠지만 수입업체들은 하루하루 숨 막힐 듯한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부와 한은이 스무딩 오퍼레이션 등을 통해 레벨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작년 말부터 계속돼 온 시장 구조적 변동 상황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구조적으로 달러 유출에 따른 수급 상황이 환율을 계속해 밀어 올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국내 개인과 기관의 해외자산 투자로 달러가 계속해서 나가는 가운데 코스피 급등으로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리밸런싱 차원에서 주식을 팔고 달러로 환전해 해외로 송금하고 있는 상황이 맞물리고 있다. 외국인이 연초부터 최근까지 매도한 코스피 주식만 95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스팟 시장에서의 달러 유출에도 외화자금시장에서의 달러 유동성은 여전히 충분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실장이 주목한 점은 외화자금시장의 유동성 지표다. 코스피가 언제까지 오르고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자본유출입이 어느 때보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수급 요인, 대외 요인에 따라 환율의 등락은 있을 수 있지만, 유동성 상황마저 무너지면 예상치 못한 충격파는 클 수밖에 없다. 한때 우리나라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같은 나라로 비쳐 왔다. 정부가 외국인의 거래 편의성 확대 등을 추진하는 상황이어서 자본유출입 관리는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 '거시건전성 3종 세트'와는 결이 다를 것으로 보이지만 외화 유동성 관리를 위한 새로운 대책이 추진될 수 있다는 점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선임기자 /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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