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사회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적정한 선을 잘 지켜야 한다. 법이 정한 선도 있고, 도덕의 선도 있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상식의 선도 있다. 꼭 법으로 정하지 않았더라도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적절한 정도와 넘지 말아야 할 금도라는 게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유독 '선'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꺼냈다. 삼성전자 노조를 향해 공동체와 국가 경제를 고려해달라고 요청하면서도 '선 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넣었다. 노동권을 존중하되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균형과 금도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였다.
선을 넘는다는 건 도가 지나쳤다는 뜻이다. 사회적 비난도 뒤따른다. 하지만 시장은 언제나 명확한 선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선을 '넘을 듯 말 듯' 긴장감이 가격과 심리를 움직인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5월 금융통화위원회가 딱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지금 금통위는 시장에 안도와 긴장을 동시에 줘야 하는 어려운 줄타기 위에 서 있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은 다시 긴장 국면으로 들어섰다. 미국 30년 국채금리는 장중 5.19%를 웃돌며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얼마 전만 해도 앞으로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인하 횟수를 고민했던 시장은 금리 인상 전환 가능성을 대비하기 시작했고, 금리 발작이 일어났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이라는 전제가 깔릴 만큼 중동 전쟁 장기화와 이에 따른 유가, 물가가 문제였다. 공개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대다수(majority) 참가자들이 "인플레이션이 계속해서 2%를 끈질기게 웃돈다면 어느 정도의 정책 긴축(some policy firming)이 적절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한국과 미국 등 전 세계 채권금리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통화정책 피벗을 했던 2023년 11월 수준으로 올라왔다.
달러-원 환율 역시 어느새 1,500원대를 낯설지 않은 숫자로 만들고 있다. 한때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비상 상황에서나 보던 레벨이었지만 시장은 이제 1,500원 환율을 '위기'보다 '새로운 기준선'에 가깝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환율 상승은 곧바로 수입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국제유가, 반도체 가격, 적극 재정 기조, 주가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까지 겹치면서 성장과 물가 모두 예상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시장 예상을 대폭 웃돌았다. 민간 소비와 수출, 설비 투자 등 모든 면이 예상보다 견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은행 역시 이전과는 다른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3주 전 한은 부총재는 공개적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례적이다. 중앙은행이 향후 정책 방향을 노골적으로 시사하는 데는 늘 의도가 있다. 시장 기대를 미리 조정하고 과도한 치우침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실제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연내 여러 번의 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5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실물경제와 유가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경기 충격,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동시에 키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이번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되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열어두는 '매파적 동결'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관심도 이미 그 지점에 맞춰져 있다. 인상 소수의견이 몇 명 나오는지, 향후 6개월 기준금리 전망을 담은 이른바 'K-점도표'에서 어느 수준에 점이 몇 개나 찍힐지가 핵심이다. 소수의견 한 명이면 8월, 두 명이면 7월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시장금리가 상당 부분 긴축 시나리오를 반영한 만큼 한국은행이 필요 이상으로 강한 매파 메시지를 던질 필요성은 크지 않다.
최근 정부가 국고채 금리 급등, 과도한 환율 움직임에 구두개입에 나선 만큼, 통화당국 역시 발을 맞추며 매파 톤을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와 금리, 환율, 주가, 집값이 동시에 치솟는 시기다. 이런 국면에서는 기준금리 숫자 자체보다 중앙은행의 상황 판단과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중요해진다. 우리는 이미 2021년 한국은행의 선제적 대응이 시장 흐름을 어떻게 바꿨는지 경험한 바 있다.
결국 지금 금통위의 과제는 시장을 안심시키는 것도, 겁주는 것도 아니다. 한은이 어디까지를 '넘어선 안 될 선'으로 보고 있는지를 통해 시장이 함부로 선을 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새롭게 꾸려진 한은 금통위원과 신현송 총재의 기자회견 말 한마디가 '시장의 기준선'이 되는 시기다. (경제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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