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코스피를 본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4,000(4천) 언저리였던 지수는 8천을 넘었고 상방은 열려 있다고 한다.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코스피 8천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정책 홍보의 대표주자로 손색이 없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 사진]
쪼개기 상장, 미공개 정보 이용, 솜방망이 처벌로 뒤숭숭하던 국내 증시가 외국인 매도세를 개인이 다 받아낼 정도의 시장으로 변모한 데는 반도체의 힘도 있지만 '믿음'이 작용했다. 증시가 투명하게 운영되고, 주가조작을 하면 처벌되고, 이익 배분이 확실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머니무브를 일으킨 것이다.
청약시장을 본다.
지난달 기준 청약통장 전체 가입자 수는 2천602만여명으로 2020년 4월 이후 가장 적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첨 확률이 낮아졌다는 개인의 경제적 계산을 넘어 정부가 운영하는 공적 분배 시스템에 대한 '신뢰자본'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신호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 사진]
내집 마련을 원하는 청약자들은 불법 위장 전입, 비현실적인 가점 인플레에 배신감을 느끼고 시스템에서 이탈한다. '내가 규칙을 잘 지키면 사회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워져서다.
청약시장에서 속출하는 청약통장 만점(84점). 만 30세에 청약통장에 가입해 15년간 무주택이면서 본인을 포함해 같이 사는 식구가 최소 7명인 대가족이라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84점을 숫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고,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가점 당첨자가 속출한다'며 청약에 당첨된 세대를 전수조사하겠다고 한다. 청약자들은 청약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고 믿지 않으며 청약 시스템을 관리, 운용하는 정부는 청약자를 믿지 못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은 2021년부터 반기마다 부정청약을 수백건씩 적발하면서 믿음의 성벽을 쌓아왔다. 부양가족 가점을 노리고 위장전입하는 사례를 찾아내려고 어느 병원, 어느 약국을 다니는지까지 들여다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쉽긴 하지만 부정청약을 일소했다는 믿음이 청약자들 사이에 뿌리내린다면 소기의 성과는 이룬 것일 테다.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혜훈 전 의원이 가점을 부풀려 지난 2024년 '래미안 원펜타스' 청약에 당첨된 사실이 올해 초 드러났다. 시스템이 부정행위자를 완벽히 격리하지 못할 때 정직함의 가치는 시장 바닥으로 떨어진다.
부정청약을 조장하는 청약 제도도 집을 사려는 사람들을 더욱 미덥지 않게 한다. 당첨 부적격 판정을 받는 사람들 대부분은 고의가 아닌 단순 입력 실수로, 청약 제도가 난수표 수준으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무주택 기간은 만 30세 또는 혼인신고일 중 빠른 날부터 계산해야 하는데 이를 착각하거나 따로 사는 부모님을 부양가족에 잘못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부양가족 가점을 부풀리는 경우가 늘자 국토부는 주택공급규칙을 개정해 만 30세 이상 자녀의 부양가족 인정 기준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주택공급규칙은 1978년 제정 이후 140번이 넘게 개정되며 누더기가 됐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수시로 바뀌니 청약하려는 사람들은 고시공부하듯이 분양공고를 뜯어봐야 한다. 청약 실수는 앞으로도 더 나올 것 같다.
신뢰자본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제도와 계약은 신뢰가 결합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도 전날 국무회의에서 최근 상승세인 집값 대책을 물으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뢰자본의 붕괴는 비가역적이다. 한 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단순히 불법을 조사하는 수준을 넘어 규칙 자체를 고치고 감시 비용을 몇 배로 지출해야 하는 사회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정직하게 기다리면 내 차례가 온다'는 예측이 가능할 때 청약 제도의 신뢰자본이 쌓인다. 반칙이 불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 신뢰 회복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산업부 부동산팀장)
hjlee2@yna.co.kr
이효지
hjlee2@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