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4월17일 '현장칼럼'에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채권시장의 시각으로 분석했다. 결론은 '덜 말하는 총재가 온다'였다.
압박을 받으면 수렴하고, 불확실한 영역에서는 말을 아끼며, 기자회견보다는 통화정책방향문의 행간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썼다.
틀렸다.
28일 신현송 총재의 첫 기자간담회는 그 예상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정확히 말하면 총재 스타일에 대한 판단은 틀렸고, 인사청문회 당시와 비하면 경제상황은 한 달 사이 한층 명확해졌다는 점이 바뀐 부분이다.
청문회 당시에는 없었던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서프라이즈로 확인됐고, 불확실성의 윤곽이 좁혀졌다.
총재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5.28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 청문회와 기자회견은 다른 성격의 자리
청문회는 정치적 자리다. 질문자는 국회의원이고, 맥락의 인준이다. 답변의 목적은 정책 신호라기보다는 생존이다.
의원이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동의하시죠"라고 몰아붙일 때 후보자가 선택할 수 있는 언어 선택의 폭은 좁다. 그 자리에서 나온 수렴과 유보의 답변을 정책 성향으로 읽은 것은 오판이었다.
기자회견은 다르다. 질문자는 시장이고, 맥락은 시그널이다.
총재의 발언 하나하나가 국채 금리와 환율을 움직인다. 이 자리에서 모호함은 비용이다. 시장이 해석을 못 하면 변동성이 커지고, 그 변동성은 다시 정책 여건을 어렵게 만든다.
명확한 신호를 주는 것이 오히려 안정적인 선택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주제로 말해도 두 자리에서 나오는 언어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 달 전 칼럼은 청문회라는 필터를 충분히 걷어내지 못했다.
◇ 갈 길이 명확해진 것은 총재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리의 문제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한 달 사이 상황 자체가 달라졌다.
청문회가 열린 4월 중순과 지금은 다른 국면이다. 당시는 중동 전쟁의 파급 영향이 국내 경제 지표에 얼마나 깊이 침투할지 불분명했다.
총재 후보자가 "파악하고 있다, 살피겠다"는 언어를 쓴 것은 단순히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을 수 있다. 실제로 데이터가 아직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온 데이터는 1분기 GDP와 국내총소득(GDI) 지표다.
수치 자체가 놀라웠다. 신 총재 역시 긴 시간을 할애해 이 부분을 짚었다.
GDP 성장률이 전년동기대비 3.6%인데 GDI가 무려 12.3%에 달했다.
GDI가 교역조건의 변화를 반영하는 만큼 같은 양을 생산해도 수출 가격이 높으면 GDI가 더 크게 오른다.
반도체 가격이 그만큼 뛰었다는 의미다. 총재는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반도체 사이클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 수치가 확인된 순간, 통화정책의 방향은 사실상 정해졌다.
총재가 "물가를 보나 성장을 보나 환율을 보나 부동산을 보나 갈 길이 비교적 명확하다"고 말한 것은 수사가 아니었다. 그는 이를 두 마리, 세 마리 토끼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는 딜레마와 대비하며, 이번은 예외라고 직접 말했다.
4월 소비자물가도 확인했지만, 방점은 경제성장에 따른 수요측 물가 압력에 찍힌다.
◇ '실용적 매파' 확인 그 이상…채권시장이 받아 든 숙제
간담회의 가장 주목할 장면 중 하나는 채권시장을 달래지 않았다는 점이다.
채권 시장이 4차례 금리 인상을 선반영하는 상황이고, 이날 기자회견 중에도 국채금리는 오름세를 나타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총재는 시장의 과도한 반응을 진화하거나 속도 조절의 여지를 남기는 언어를 쓴다.
신 총재는 그러지 않았다. 최종 금리에 대해 "3.5%가 될 지 그 밑이 될지 아니면 더 위가 될지 모른다"며 상단을 막지 않았다. 시장이 반영한 경로를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장용성, 유상대 두 금통위원이 인상을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금리를 올리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케이스를 만들 수 있었다"고 인정했다.
동결은 불확실성에 좀 더 무게를 둔 전술적 선택이었을 뿐, 방향 자체에 대해서는 위원 전원이 뜻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시장은 신 총재를 취임 전부터 '실용적 매파'로 분류했다. 물가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강조하는 기조, 해외에서 오랜 기간 중앙은행 정책 논의에 직접 참여해온 경험이 그 근거였다.
그러나 '실용적'이라는 수식어에는 유보가 담겨 있었다.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기자회견은 그 유보를 걷어냈다.
흥미로운 것은 신 총재가 택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선택지다. 5월에 금리를 올리되 비둘기파적 메시지나 점도표로 시장을 달래는 방법도 있었다.
인상이라는 행동은 매파적이지만, 속도 조절의 여지를 함께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신 총재는 동결을 하면서도 최종 금리의 상단을 열어뒀다. 어떻게 보면 5월 인상보다 오히려 더 매파적인 신호로 읽힐 여지도 있다.
이것이 채권시장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최종금리의 상단이 열려있는 한, 국채금리의 레벨 자체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
'전술적 차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 금통위에서 인상의 문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래도 달래는 말이 없었다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앞으로의 기자회견도 같은 구도로 읽어야 한다.
금통위 전 채권시장이 금리를 올려놓은 것은 총재의 성향을 간파해서가 아니었다. 중동발 인플레이션 압력, 반도체발 성장 압력이 주된 요인이었고 시장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번 금통위가 금리 안정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약간 품기도 했었다.
그 기대는 빗나갔다. 동결이었지만, 시장이 받아 든 메시지는 인상, 그 이상이었다. (경제부 시장팀장)
smjeong@yna.co.kr
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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